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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 공감칼럼# 노동인권# 취약 노동

너무나 많아진 무늬만 프리랜서

다루는 사건 중 상당수가 근로자성을 다투는 것이다. 그 중 몇 개를 소개한다.

1. 작년 1월 뮤지컬 영웅본색이 무대에 올랐다. 배우 류준상이 주연을 맡아 화제가 된 작품이다. 그러나 막이 오른 지 한 달도 안 되어서 공연은 중단되었다. 코로나19가 결정적이었다. 팬데믹 현상이 공연계를 강타했다. 몇 개월을 공연 준비에 매진했던 배우들은 급여를 받지 못했다. 3개월의 연습 기간 배우들의 급여는 O원이었다. 공연이 시작되면 그제서야 공연일당 11만원을 받게 되는데, 공연이 중단되는 바람에 받을 수 있는 돈은 극히 적었다. 그마저도 제작사가 파산하는 바람에 어렵게 되었다. 앙상블 배우(무대의 배경처럼 모든 장면에 등장해서 일인 다역을 하는 배우), 조연 배우는 임금 체불로 고용노동청에 진정을 했다. 그러나 서울고용노동청 강남지청은 이들이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각하했다. 같은 이유로 체당금 신청도 거부했다. 현재 행정심판 중이다.

2. MBC의 보도국에 소속되어 <뉴스투데이>에서 10년 가까이 일한 방송작가 2명이 개편을 이유로 쫓겨났다. MBC는 이들이 프리랜서라고 주장했다. 회사가 계약 해지의 의사표시를 하면 곧바로 계약이 해지되는 프리랜서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방송작가들이 일을 한 상황을 보면 프리랜서가 맞는지 의심스럽다. <뉴스투데이>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전 6시부터 7시 반까지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이다. 방송작가들도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새벽 3시에 출근해서 방송을 모니터링하고 퇴근할 때까지 일한다. 이들은 국장, 차장의 지시를 받으며 일을 한다. 프리하게 일을 하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다. 이에 방송작가들은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다. 그러나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이들이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각하했다. 다행히 중앙노동위원회는 근로자이며 부당해고라고 판정했다. 며칠 전 MBC는 중앙노동위원회 판정을 취소해달라며 소를 제기했다.

3. 핸드폰 판매 일을 하던 노동자가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한 곳이 핸드폰 판매 대리점이었다.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대리점을 지켰다. 청소, 고객 응대, 각종 서비스 업무, 핸드폰 판매까지 대리점에서 하는 모든 일을 도맡아 했다. 회사는 십 수 개의 대리점을 보유하면서 연 매출 240억 원에 이르는 기업이었다. 그러나 회사는 악랄했다. 회사는 실적 미달을 이유로 판매 노동자에게 임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매일 출근해서 일을 했지만 말이다. 대신 생계비가 필요한 판매 노동자에게 사내 대출을 해줬다. 일 년 넘게 돈을 갚아나간 판매 노동자는 돈을 다 갚는 순간 일을 그만두었지만, 이번에 회사는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판매 노동자 퇴사 후 판매 노동자와 거래한 고객의 클레임을 회사가 대신 처리했다는 게 그 이유다. 심지어 고객이 미납한 통신료에 대해서까지 판매 노동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코로나19는 공연계에 엄청난 타격을 가했다. 근근이 살아가던 무명 배우들은 수입이 끊겼다. 법상 근로자라면 정부가 지원하는 고용유지지원금, 체당금을 받을 수 있겠지만 프리랜서는 그렇지 않다. 정부의 지원은 고통의 크기를 기준으로 하지 않는다. 근로자인지 여부가 관건이다. 해고도 마찬가지다. 해고를 당한 사람이 법상 근로자라면 부당해고 구제철차를 밟을 수 있다. 그러나 프리랜서라면 단지 계약의 해지일 따름이다. 갑작스런 일자리 상실, 그로 인한 경제적 타격은 다를 바 없지만 그가 근로자인지, 프리랜서인지에 따라서 해결 여부가 갈린다. 임금도 마찬가지다. 일을 한 사람은 응당 그에 합당한 대가를 받아야 한다. 그래서 노동법은 최저임금을 정하고, 임금 미지급을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법상 근로자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다. 똑같이 일을 해도 법상 근로자가 아니면 임금 미지급을 다툴 방법은 소송밖에 없다. 심지어 급여를 0원으로 하는 계약을 맺어도 문제가 안 된다. 노동법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계약 자유의 원칙을 근간으로 하는 민법이 자리한다.

어디 이뿐인가. 하루 14시간, 주 68시간 일을 하는 드라마 제작 스태프들, 만약 이들이 근로자라면 이러한 장시간 노동은 불법이다. 그러나 프리랜서라면 문제가 안 된다. 장시간 노동을 하는 것은 스태프들의 의지와 무관하다. 스태프들은 그저 제작사측에서 시키는 대로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제작사측은 노동시간을 줄이자는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의 단체교섭 요구에 불응하고 있다. 일을 그만두면 700만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계약을 맺은 미용사, 법상 근로자라면 이런 계약은 무효지만 법상 근로자가 아니면 문제가 없다. 직장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노동자, 법상 근로자라면 회사는 괴롭힘에 대해 조사하고 조치해야 할 의무가 있지만, 법상 근로자가 아니라면 회사는 굳이 조사도, 조치도 취할 필요가 없다.

근로자성을 다투는 사건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계약의 당사자들이 대등하지 않다는 것이다. 일방은 마음대로 계약 내용을 결정하고 시킬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다른 일방은 시키는 대로 일을 해야 하고 계약 내용에 자기 의사를 반영할 수 없다. 우월한 지위에 있는 자가 흔히 쓰는 수법이 있다. 근로계약서 대신 프리랜서 계약서를 쓰고, 4대 보험 신고를 하지 않으며, 3.3% 세금을 떼는 것이다. 그러면 노동법상 사용자 책임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물론 법원은 계약은 형식이 아니라 실질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노동자가 법원의 판결을 받기 위해 들여야 할 시간, 돈, 노력은 너무 크다. 법원이 제대로 판결을 하리란 보장도 없다. 노동행정과 입법이 중요하지만 현재 논의되는 상황을 보면 답답할 따름이다.

끝으로 최근 소회를 밝힌다. 가끔 음식을 배달시켜 먹는다. 안전 때문에 요즘은 비대면으로 받는다. 배달기사가 벨을 누르면 나는 공동현관문을 열어주고, 배달기사가 3층 현관문 앞에 음식물 봉투를 놓고 가면, 나는 잽싸게 문을 열고 배달 음식을 챙긴다. 그런데 한두 달 전부터 배달기사들에게 문자가 온다. 음식 배달을 완료했다는 안내 문자. “맛있게 드십시오. 고맙습니다.^^”. 심지어 사진까지 있다. 문자를 받을 때마다 마음이 쓰리다. 문자 안 보내도 바로 알 수 있는데 왜 이런 수고를. 가뜩이나 바쁠 텐데 이런 것까지 챙기려면 얼마나 성가실까. 문자 발송 비용은 배달기사가 내겠지. 언제부터인가 일제히 모든 배달기사에게 문자가 오는 것을 보면, 분명 누군가 시킨 일이다. 어디 배달 음식뿐인가. 택배기사는 두 번 문자를 보낸다. 오늘 몇 시부터 몇 시 사이에 배송을 할 것이라는 문자 하나와 배송을 완료했다는 문자 하나.

이런 서비스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는 분명하다. 당장에는 고객을 위한 것이라지만, 동시에 택배업체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실제 기사들을 위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고객이 기사를 콕 집어서 배달이나 배송 일을 시키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이런 부가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해서 기사들의 급여가 올라가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해야 하니까 하는 것일 뿐이다. 그럼 왜 해야 하는 것인가. 시키니까 하는 것이다. 거부하거나 제대로 문자를 발송하지 않으면 어떤 식으로 불이익을 입고 쫓겨날 것이다. 그래서 안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은 기사들이 법상 근로자의 지위에 있음을 보여준다.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 그 명령에 따라 근로를 제공해야 하는 사람, 사용자와 종속적인 근로관계를 맺은 사람이 바로 법상 근로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법상 근로자가 아니다. 프리랜서다. 이런 사람들이 너무 많다. 정확하게는 너무 많아졌다. 정부가 손 놓은 사이 법 밖으로 내몰리는 사람들, 무늬만 프리랜서들이 너무 많아졌다.

윤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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