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랐을까요? 10년이 지나도록
여자 도장공 여럿이 모인 자리에 껴든 적이 있다. 도장 ‘공’이라는 말이 맞는지 모르겠다. 누구도 그들을 ‘장인(工)’이라 여기지 않으니. 남성 도장공들이 커다란 붓을 들고 건물이나 커다란 설비를 칠하고 떠나면, 큰 붓이 닿지 않는 작은 틈새를 채우는 것이 그네들 역할이다. 현장 용어로 터치업이라고 하나, 실제로는 ‘도장 아줌마’ 정도로나 불릴까.
누가 기술을 알아주지 않아도, 이들이 일을 얻기까지 경쟁은 치열하다. 여자가 일할 만한 자리가 부족한 남초-공업 도시였다. 남들은 알바나 임시직으로 취급하는 일도 귀하다. 인맥과 처세를 동원해서 일을 얻는다. 그날 자리에 모인 여성 도장공들의 걱정도 줄어만 가는 일자리였다. 경기 불황으로 인해 건설 현장이 줄어들자 도장 일도 영향을 받았다. 게다가 자꾸 ‘젊은 사람’들이 들어온다고 했다. 이전까지 도장 ‘알바’는 50대 여성들이나 하는 일이었는데, 요즘은 ‘새댁’들마저 일을 찾아온다고 했다.
“이 일은 젊은 사람들이 하면 안 되는데. 몸에 안 좋아.”
일자리를 뺏긴다는 불안이 깔린 대화이긴 해도, 저 순간은 진심 어린 걱정이었다. 애를 두엇은 낳고 나서나 이 일을 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야 다 늙었으니 상관없지만” 젊은 사람들이 뭣도 모르고, 그러니까 몸 상하는 줄도 모르고, 돈 보고 일을 찾아온다고 걱정을 했다.
이들이 다루는 것은 페인트. 기업이 공장 설비를 칠하는 페인트를 천연이나 친환경으로 구매했을 리 없다. 페인트의 색을 내는 안료에는 중금속을 비롯해 납, 크롬, 아연화합물, 흑연 성분이 담겼고, 이 물질들은 사람 몸에 차곡차곡 쌓인다. 옆에서 용접이라도 한다면, 납 중독의 위험도 높아진다. 발암물질로 잘 알려진 납은 생식독성이기도 하다.
생식독성 물질이란, 생식기능, 생식능력, 태아의 발생 및 발육에 유해한 영향을 주는 물질이다. 유산·불임, 선천성 질환을 지닌 자녀를 낳을 가능성을 높인다고 했다. 이런 생식독성 물질에 노출된 가임기 여성이 국내 최소 10만 명이라 했다.(고용노동부, 2018)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식독성이라는 말 자체를 들어본 노동자가 20%에 불과했다. (인권위원회, 2016)
10명 중 2명만이 생식독성에 대해 알고 있다지만, 어쩐지 믿을 수 없다. 아이 둘 이상은 낳아야 이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노동자가 생식독성의 존재를 모를 리 없어 보인다. 물론 그의 회사(원청이건 용역/파견 업체이건)는 결코 작업자들에게 생식독성 엇비슷한 것도 알려준 일 없다. 그러나 기업이 아무리 숨겨도 유해물질이란 일하는 사람에겐, 알듯 모를 듯 아는 비밀이다. 다만 과로가 몸에 나쁜 것을 몰라서 퇴근을 안 하는 것이 아니듯. 알고도 일할 뿐이다.
하지만 ‘몰랐다’는 말 역시 믿는다. 사람은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문제는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회사가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 이리 생각하는 편이 효율적이다. 일터는 효율을 중시하는 공간이다. 매달 통장에 같은 날 똑같은 금액이 찍히는 일자리는 귀하다. 내가 머리를 감싸 쥔다고 해결될 것 없는 문제는 애당초 문제라 여기지 않는 편이 낫다.
정말로, 몰랐다는 말도 믿는다. 내가 인터뷰한 이들은 말했다. “왜 몰랐죠. 몰랐던 게 너무 바보 같은데.” 자신이 다니던 회사에 유해물질이 만연했고, 임신한 몸으로도 일을 했고, 아픈 자녀가 태어났다. 2세 질환 직업병 문제라 했다.
왜 몰랐나. 스스로가 만든 물음에 답하기 위해 이들은 말했다. 너무 어려서. 첫 직장생활이라. 의심하기에는 너무 큰 회사여서. 사원을 ‘가족’이라 말하는 회사였고, 일이 많고 분주해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 회사였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입사한 회사에서 동기들과 즐거웠고 선후배에게 의지했다. 그런 회사에서 의심은 소용없었다. 기업은 일하는 사람의 무지를 조장하는 수많은 장치를 가졌다. 장치는 작동했고, 사람들은 성실히 일했다.
“몰랐거든요. 안전이라든지, 전리방사선이라든지, 유해물질이라던지 설명해준 적이 없었거든요. 그분(관리자)들도 몰라서 그랬을까요? 우리 상사 연락이 되면, 한번 그걸 물어보고 싶다니까요. 진짜 몰랐냐고.”
2세 질환 문제로 산재 신청을 한 이의 물음이다. 10년 전 처음,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들을 인터뷰했을 때도 저 이야기를 들었다. “회사가 정말 몰랐을까요?” 달라진 것은, 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으로 멈추지 않고, 대를 이어 다른 생명으로 파고들어가는 화학물질의 유해성을 새삼 확인했다는 것뿐.
몰랐을까요. 노동자는 알고도 몰랐을 수도, 몰라야 하기에 몰랐을 수도, 진정으로 몰랐을 수도 있다. 모를만한 사람을 뽑아 일을 시키고, 알아도 어찌할 수 없는 조건을 만들고, 알면서도 모른 척하도록 길들인다. 그렇다면 회사는? 기업과 그 기업에 갖은 혜택을 베푼 국가는 “진짜 몰랐냐”고 묻고 싶다.
이 뻔한 물음을 10년이 지나도록 하는 이유는, 더 낡은 법이 제정되었기 때문이다. 삼성보호법이라 불리던 산업기술보호법(2020년)보다 한결 더 후퇴한 일명 반도체 특별법(국가첨단전략산업 경쟁력 강화 및 보호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첨단 전략 산업의 경쟁력 강화라는 명분 앞에서 비밀과 은폐는 더 자유로워졌다. 기업이 무엇을 숨길지는 빤하다.
글 _ 희정(기록노동자, ‘두 번째 글쓰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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