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형법 추행죄 무죄, 대법원 판결의 의미
2022년 4월 21일, 대법원에서 중요한 판결이 있었다. 군형법상 추행죄로 기소된 사건에 대하여 유죄로 인정한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한 것이다(대법원 2022. 4. 21. 선고 2019도3047 전원합의체 판결) 이 사건이 발생한 것은 20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기서 말하는 ‘사건’은 추행죄로 기소된 사건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육군의 성소수자 색출사건’을 말한다. 2017년 육군 중앙수사단은 군 내 동성애자 군인을 색출하여 형사 처벌하라는 장준규 육군참모총장의 지시 하에 수십 명에 달하는 군인들을 수사하였다. 그 과정에서 모욕적인 심문과 위법한 증거수집, 각종 인권침해가 일어났다.
육군이 이처럼 성소수자 군인 색출수사를 자행할 수 있었던 근거는, 바로 군형법 제92조의6 추행죄가 있기 때문이다. 군형법상 ‘추행죄’는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강제추행’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가해와 피해의 관계, ‘강제성’이 없어도 처벌할 수 있다. 즉, 남성간의 성행위를 ‘추행’(醜行)이라고 규정하고, 남성 군인간의 성행위를 처벌하는 조항인데, 강제성 유무, 영내외인지 여부 등 상관없이 처벌할 수 있다. 이는 동성애를 처벌하는 조항으로, 그동안 수차례 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제청신청이 있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2002년, 2011년, 2016년 세 차례에 걸쳐, 군형법 추행죄가 합헌이라고 결정하였다. 헌법재판소는 군형법상 추행죄가 ‘합의 없이 이루어진 동성 사이의 성폭력’과 ‘합의에 의해 이루어진 동성 사이의 성적 행위’를 동일하게 형사 처벌하는 것은 자기책임원칙과 평등원칙에 위반된다는 주장에 대하여, “군대는 동성 사이의 비정상적인 성적 교섭행위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고”,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동성 군인 사이의 성적 만족 행위”를 처벌하는 규정이므로, 이성 사이의 성적 행위를 한 군인과 비교하여 차별취급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헌법재판관들의 동성애 혐오적인 시각은 결정문에서, 동성 간 성행위를 “비정상적”, “혐오감을 일으키는”,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이라고 표현한 것에서 여과 없이 드러난다.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도 없는 시대착오적이고, 헌법재판소의 존립 이유를 스스로 몰각하는 결정이었다.
과거에는 동성애를 치료해야 할 정신질환으로 규정하거나, 종교적인 이유로 동성 간의 성행위를 처벌한 차별의 역사가 있지만, 현대 사회에서 동성애를 처벌하는 것은 비과학적이고, 반문명적인 일이 되었다. 1969년 미국에서 스톤월 항쟁이 일어났고, 전 세계적으로 성소수자 해방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1973년 미국 정신의학회는 동성애를 정신질환 목록에서 제외하였고, 1994년 유엔 자유권위원회는 동성애를 처벌하는 소도미법이 자유권 규약 위반이라고 결정하였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많은 국가들이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에 대한 차별금지를 법제화하고, 동성혼 제도화 등 완전한 평등을 지향하고 있다. 이미 한국도 2001년 국가인권위원회법을 제정하면서 성적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금지를 명문화하였고, 2011년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으로서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을 이유로 한 인권침해를 조사하는 결의안을 채택하는데 찬성표를 던진 바 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시대적인 변화, 기본적인 인권규범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반면에, 대법원의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은 헌법재판소 보다 한 발 앞서, 군형법 추행죄의 위헌성을 판단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대법원 다수의견은 “동성 간의 성행위가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라는 평가는 이 시대 보편타당한 규범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워졌다”고 설시하고 있다. 사적 공간에서 자발적 합의에 따른 성행위를 한 경우와 같이, ‘군인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라는 보호법익을 침해하였다고 보기 어려운 경우까지 처벌하는 것은 헌법상 보장된 평등권,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는 것이므로 허용될 수 없다고 판결하였다.
이 당연하고도 상식적인 판결을 받는데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로 인하여 수년 동안 고통 받은 당사자들, 그 시간들은 누가 보상할 것인가. 심지어 헌법재판소는 지금도 군형법 추행죄 위헌제청사건을 몇 년 째 방치하고 있다.
장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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