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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 공감# 공감칼럼

상처는 언젠가 말을 한다

이 책의 발행일은 올해 3월 2일이다. 대선 막바지 시점이었다. 그러니 주목을 받기도 힘들었을 것이지만, 생각보다 책 판매율이 저조하단다. 아직도 1쇄가 다 안 나갔으니 이 책의 장래가 어둡기만 하다. 그런 책을 소개할 기회를 주신 공감에 먼저 고마움을 전한다.

2년 전에 1권에 해당하는 『우리에겐 기억할 것이 있다』를 냈다. 한국 현대사의 국가폭력의 현장을 찾아가는 현장 답사기였다. 부제는 ‘인권운동가 박래군의 한국현대사 인권기행’이었다. 이번에 그 두 번째 인권기행 책을 낸 것이다. 첫 권이 비교적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곳들이었다면, 두 번째 권은 그렇지 않다. 동학농민혁명 현장을 더듬은 첫 번째 꼭지 외에는 독자들이 아마도 생소할 수 있는 그런 곳들이다. 두 번째 꼭지로 다룬 천주교 병인박해 순교성지야 천주교 신자들에게는 친근한 곳이라고 하지만 비신자들이나 다른 종교를 신앙하는 이들에게는 낯설기는 마찬가지다. 진주 형평사 얘기는 그 중요도에 비해서 안 알려졌던 곳이고,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지 같은 곳은 산 속에 오솔길을 따라서 찾아가는 그런 곳도 포함되어 있다.

형제복지원, 선감학원 터 등은 다크투어로도 사람들이 찾는 곳이 아니다. 그러니 안내판도 없는 길을 생존자들의 안내를 받으며 찾아가야 했다. 동두천 미군기지촌의 여성들의 흔적들을 찾아가는 길도 그렇다. 폐허와 무덤들이 대부분인 곳들이다. 부동산 개발로 시끄러운 때, 재개발이 남긴 상처를 찾아서 광주대단지 사건, 용산참사를 둘러보고,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인 백사마을로 돌아봤고, 마지막으로 이소선 어머님의 흔적을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시작해 옛 구로공단을 거쳐서 동대문 창신동 골목길까지 찾았다.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라는 세상의 호명에 가려진 노동운동가, 인권운동가 이소선의 면모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니까 두 번째 책에서는 한국 근대의 시작점부터 훑어 올라온 것이다. 국가폭력과 그에 저항했던 사람들의 얘기이기도 하고, 상처 받은 이들의 아픈 얘기들을 찾아 떠난 여행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묻고는 한다. 왜 그런 아픈 현장을 찾느냐고, 그렇잖아도 아픈 현장을 지키는 인권운동가의 길을 걸어왔는데 여행도 그런 곳만 찾아가는 이유가 뭐냐고 묻고는 한다.

나는 이 나라의 인권의 역사를 현장을 답사하면서 되짚어보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1권에서 찾아갔던 곳은 국가폭력이 극심했던 현장들이다. 제주 4.3은 이 나라에 언제부터 ‘빨갱이’라는 말로 국민과 비국민을 나누었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합 답을 찾기 위해서였다. 제주 4.3과 여순에서 시작된 빨갱이 사냥이 한국전쟁 시기에 민간인 학살로 이어졌고, 그렇게 만들어진 극단적인 반공국가에서 우리는 자유를 찾기 위한 몸부림을 해야 했다. 그런 게 한국 인권의 역사였다.

2권에서 찾은 동학농민현장에서는 동학이 내세웠던 평등의 기치에 왜 조선의 민중들이 공명하고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싸웠는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걸음이었다. 그 평등의 기치는 천주교 신자들도 공유하고 있었고, 일제 시기 가장 오랜 기간 유지되었던 백정들의 단체인 형평사로도 이어졌다. 일제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국가폭력의 유산들이 전혀 청산되지 못한 해 사회복지시설로, 미군기지촌으로, 다시 재개발의 현장으로, 노동현장으로 계승, 발전되었음을 말하고 싶었다. 사회의 약자들인 부랑인, 여성들, 빈민들에게 인신매매와 납치, 공인된 폭력과 죽음과 시신 암매장까지 이어져 내려오면서 인권은 말살되어왔다. 그런 현장을 나는 소개하고 싶었고, 그 현장을 통해서 우리의 암울한 역사들을 되짚어 보자고 말하고 싶었다.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가공할 힘에 의해서 짓눌려 상처 입은 사람들이 강요당한 침묵의 역사를 뚫고 그들이 말하기 시작할 때, 우리 사회의 인권은 전진되어 왔음을 알리고 싶었다. 상처 입은 사람들은 수동적인 희생양의 위치에 머물지 않고, 기회 있을 때마다 자신들의 말을 함으로서 적극적으로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되었다. 세상에서 까맣게 잊고 있었던 형제복지원의 생존자들이 망각의 세월을 지나서 그 존재를 드러냈을 때, 그 뒤를 이어서 선감학원 생존자들과 서산개척단 피해자들이 세상에 나왔고, 멈추어 있던 진실・화해위원회를 재가동하게 만들었다. 미군기지촌에서 양공주니, 양갈보니 온갖 멸시를 당하던 그들이 세상의 손가락질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인권과 동료들의 인권을 위해 어렵게 단체를 만들고 문제 제기했을 때 여성들의 인권은 한 걸음 전진하고, 우리 사회의 인권의 지평을 넓혀왔다.

피해자가 활동가로 나선 대표적인 인물이 이소선이다. 그는 청계피복노동조합의 나이 어린 여공들의 비참한 현실을 목격한 아들 전태일이 분신으로 항거한 그 뒤를 이어서 수백 번 연행되고 구류를 살고, 세 번씩이나 감옥을 가면서도 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차별을 걷어내기 위해 온몸을 던져 싸운 활동가였다. 그는 노동자만이 아니라 민중들의 투쟁 현장에 거침없이 연대를 하면서 자신의 활동 폭을 넓혀갔고, 나중에는 같은 처지의 유가족 단체들을 만들어 이끌었다. 그의 감동적인 삶, 그리고 고단했던 삶의 궤적의 일부를 찾아 나서서 소개하고 싶었다.

이제 두 권의 현장 답사기를 내면서 10년 넘게 끌어왔던 숙제를 마쳤다. 2011년부터 현장 답사를 시작했던 것인데, 이제야 책 두 권으로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사실 이런 식의 현장 답사는 계속 해보고 싶은 일이다. 재밌는 여행기가 아니어서 사람들이 주목은 덜 받을지 몰라도 인권역사가 배어 있는 그런 현장을 찾아가 사건을 소개하고, 그때 그곳에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지금의 이 자리가 수많은 사람들의 고난에 찬 투쟁의 결과임을 얘기하고 싶다. 지금 당장은 아니어도 지금의 일을 마친 다음에는 다시 길 떠날 배낭을 꾸릴 수 있을까? 장담은 못 하지만, 아는 아직 못 가본 현장들을 찾아가고 싶고, 그걸 통해 한국의 인권역사를 정리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2권의 후기에도 썼지만, 나는 호기심도 많고 궁금한 것도 많고, 알고 싶은 것도 많다.

나는 역사는 과거에 일어난 사건들의 시계열적인 정리가 아니라고 믿는다. 지금까지 알아온 역사는 승자와 기득권 세력의 입장에서 쓰인 역사일 가능성이 크다. 그런 역사에 균열을 내는 일은 그 역사에서 배제된 피해자와 약자의 입장에서 새롭게 역사를 조명할 때 가능하다. 언제라도 떠나고 싶은 나의 현장답사 여행은 아마도 그런 여행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여행에 공감하는 사람들과 동행하고 싶다. 그런 날은 언제 올 것인지, 아직은 너무 가늠하기도 어렵지만, 그런 꿈 하나 간직하고 오늘도 살아가련다.

 

글_ 박래군 (4.16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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