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결혼지원조례와 이별하는 중
지자체의 국제결혼지원 조례는 다양한 이름으로 존재한다. 국제결혼지원조례, ‘미혼자’ 국제결혼지원조례 또는 노골적으로 농어촌 ‘총각’국제결혼 지원 조례 등이다. 최근 기사에 따르면 이런 지원 조례가 여러 문제제기로 ‘시들해져’ 현존하는 곳 28개 (국가법령정보센터를 통해 확인)인데, 유지 중인 지자체에서도 코로나 이후 실수혜자가 거의 없고, 성차별적 요소가 있을 수 있으니 검토하라는 여성가족부의 성별영향평가 권고도 있어 폐지를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관련기사: 연합뉴스 / 성차별·매매혼 조장 지적에…농어촌총각 국제결혼지원 ‘시들’).
현존하는 조례들의 취지를 이해할 수 있는 목적 조항을 살펴보았다. 결혼 “하지 못한”이들, “원만한 가정”으로 달성 가능한 농어업에 대한 의욕 고취와 농어촌 사회의 활기, 지역사회에의 정주의욕, 인구유입, “저출산 고령화에 대한 능동적 대응” 이라는 표현을 여러 번 읽는다.
시 거주자 중 결혼을 하지 못한 농·어촌 거주 미혼남성의 국제결혼을 주선하고 이에 소요되는 비용의 일부를 지원하여 원만한 가정을 이루게 함으로써 농·어업에 대한 의욕을 고취시키고 농·어촌 사회의 활력을 불어넣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군 내 거주하는 미혼자의 국제결혼에 소요되는 비용의 일부를 지원하여 가정을 이루게 함으로써 정주 의욕을 고취시키고, 저출산 고령사회에 능동적으로 대응함을 목적으로 한다.
관내 거주하는 미혼자의 국제결혼에 소요되는 비용의 일부를 지원함으로써 인구유입을 도모하고 원만한 가정을 이루어 활기찬 농촌사회 분위 기 조성에 그 목적이 있다.
국가가 직면한 저출산 고령화 현상에 대한 원인과 해결책에 대한 지자체(뿐 아니라 국가, 사회)의 입장을 엿볼 수 있는 내용이다. 누군가는 가정을 이루고 그 안에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전제는 있지만 내용을 보면 역할 할 사람에 대한 지원이 아니다. ‘비용’이 드는 국제결혼의 성격을 인정했고, (남성과 국가가) ‘비용을 들여 들어온’ 이주여성에게 기대하는 바만 포함되어 있다. 비단 이주여성에 국한한 기대가 아니다. 가족이나 가족 내 여성의 역할이 임신 출산 양육을 통한 ‘정상적’ 사회구성원 재생산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냐고, 누군가는 그 역할로만(그런 수단으로만) 인식되는 거냐고 따져 묻고 싶(지 않다. 돌아올 답에 할말을 잃을 것 같)다. 인구정책이 여성가족부의 본업이(어야 한다)라는 ‘상상’이 현실화되고 있는 최근의 상황에서, 국제결혼지원조례와 영원한 이별은 쉽지 않아 보인다. 시들 해진 조례가 언제 다시 활짝 ‘피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2021년 4월,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와 공감은 64개 단체와 143인의 연명인을 모아 문경시 명의로 사설 행정사무소에 발송된 협조문에 대해 성차별 인종차별적 요소를 지적하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하였다. 해당 협조문에는 한국에 체류 중인 베트남(여성)유학생과 농촌총각의 ‘자연스러운’ 만남을 적극 주선해줄 것과 농촌총각과의 결혼과 출산 시 제공하는 지자체의 금전적 지원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었다. (인권위 조사로 확인된 사실관계를 보면 문경시 측은 문제가 된 내용은 행정사무소측의 자의적 수정에 의한 것으로, 본인의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고 행정사 측은 시장이 소장에게 먼저 해당 내용의 홍보를 부탁했다고 주장했다, 경위는 알 수 없지만) 주된 홍보내용에는 안정적 주거와 체류 자격 보장에 더해, 학업과 농사를 병행할 수 있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베트남유학생 한 분은 해당 내용이 베트남유학생을 잠재적 혼인대상으로 여겨 인권침해적이고, 차별적이라고 주장하며 직접 진정인으로 나섰다. 지자체는 “그럴 의도는 없었다 ”고 해명했다.
진정을 제기한 지 1년 6개월이 지난 2022년 9월,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이 있었다. 인권위는 “인구증가 관련 사업이 여성을 출산과 육아, 가사노동과 농사 등 가족 내 무급노동의 의무를 진 존재로 인식하는 가부장적인 성역할 고정관념에서 비롯됐다” 고 판단하고 “성평등 관점에서 인구증가 관련 사업 내용을 점검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시행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또 피진정인이 베트남 유학생 여성을 차별할 의도가 없었다 하더라도 성별, 국적 등 다양한 교차적 지위에 있는 베트남 유학생을 오로지 농촌지역 남성의 결혼 상대방으로만 상정한 것은 베트남 여성이 성별화 된 역할을 수행하기에 적합하다는 인종적 편견을 함의하고 있다고 판단했다(21진정0370300). 결혼이주여성과 선주민 여성 모두에 대한 차별이자 특정 출신국, 인종에 따른 차별이기도 하다는 진정인의 주장을 인정한 것이다. 다만 베트남유학생에 대한 차별인정판단에 대해서는 협조문 발송만으로는 구체적 차별이나 불이익을 입었다고 볼 수 없다고 하여 각하하였다.
차별적 정책이기는 하나, 특정 집단이나 개인에 대한 구체적 차별로 볼 수는 없다는 판단은 아쉽다. 임산부에 대한 정책이 이주민에게 차별적으로 적용돼 문제 된 사례도 있었다. 2022년 7월 서울시는 임산부 교통비 지원 조례를 만들며 서울시에 ‘주민등록 된 자’에 한정해, 외국인 임산부를 지원대상에서 배제해 문제제기를 받았다(관련기사: 경향신문 / 외국인 제외한 ‘임산부 교통비’ 지원 사업…서울시 ‘차별 행정’ 논란). 서울시 거주자에 한한 지원일수 밖에 없어서라는 설명은 설득력이 없었다. 한국인과 혼인 후 세대원으로 등록된 외국인 임산부의 경우 주민등록여부와 무관하게 서울시에 거주중이라는 증명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외국인 불포함이라는 지자체의 엄격한 해석은 이주민 차별적 관점에 따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주여성인권단체들이 시청 앞에서 항의했고, 인권위에 진정을 넣었다. 서울시는 “의도적으로 외국인을 차별하려 했던 것은 아니고 사업 추진 과정에서 세밀한 부분을 미처 살피지 못한 것” 이라고 해명했다. 결국 10월 17일 경 임산부 교통비 지원 대상에 외국인을 포함하는 내용으로 조례를 개정하겠다고 공표했다(관련기사 : 경향신문 / ‘차별 행정’ 지적된 서울시 임산부 교통비…다음달부터 외국인도 지원).
부여받은 역할로만 존재하고 역할 하는 만큼만 주어지는 인정도 부당하지만, 역할을 해도 주어지지 않는 인정을 보니(‘의도치 않은’ 불인정이라는 해명을 보니) 애초 그 역할의 중요성과 고됨, 역할을 해내고 있는 사람(존재)를 정말 수단으로만 보는 것인가, 씁쓸했다. 다문화 가정의 자녀에 대한 교복지원금 지원 차별 등 유사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특별히 이주민 차별 의도가 없었다는 답은 필요없다. 시민의 자격을 누가 심사하고 부여하는가, 필요에 따라 활용할 수 있는 대상 혹은 영원한 이방인으로 취급하고 이주민 차별적 관점을 공공정책에서 실천하여 사회불안정과 갈등을 야기하는 자야말로 사회의 공공자원을 운용할 자격이 없는 것 아닌가 자문할 필요가 있다.
국제결혼조례가 담고 있는 결혼이주여성 대한 차별적 관점은 혼인 이전, 계속 중, 종료 후 불안정한 체류지위로 겪는 갖은 풍파가 되어, 그가 처하는 여러 문제 상황의 원인이자 결론으로 악순환을 반복 중이다. 지자체가 애꿎은 이의 역할만 전제한 국제결혼지원조례와는 이별하고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길 정중히 부탁해본다. 다른 한 편에서 공감은 공감의 역할을 계획한다. 시들한 조례의 부활을 막기 위해 이주여성인권단체들과 함께 이번 인권위 결정을 토대로 잔존(?) 유사 조례에 대한 후속 대응으로 국제결혼지원조례와 확실한 이별을 권하는 활동이 이어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