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자로 살아간다는 것 – 성별정정 허가는 기쁘지만…
신년 들어서 연달아 좋은 소식이 있었다. 작년에 지원했던 트랜스젠더 성별정정 사건이 잇달아 법원에서 허가 결정이 나왔다. 2013년부터 성별정정 사건을 지원하면서, 트랜스젠더 당사자분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다. 20여 사건을 직접 지원했는데, 20대 초반부터 50대 후반까지 연령이 다양했고, 법적 성별 정정이 절박하게 필요했다.
시스젠더(Cisgender – 자신이 타고난 ‘지정성별‘과 본인이 정체화하고 있는 성별 정체성 gender identity이 ‘동일하다‘ 혹은 ‘일치한다‘ 고 느끼는 사람을 뜻한다) 세상에서 트랜스젠더는 소수자이다. 시스젠더 세상의 법제도를 트랜스젠더에게 맞추라고 강요하는 것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트랜스젠더 성별정정 사건을 지원할 때마다 절실하게 느낀다. 정정하려는 성별의 ‘시스젠더’의 신체외관과 얼마나 흡사한지, 내외부 생식기는 수술하였는지 요구한다는 것 자체가 트랜스젠더인 사람에게 시스젠더의 몸에 맞추라는 것과 다름이 없다.
많은 사람들은 성별이 성염색체나 생물학적인 요소로 결정이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법적 성별은 생물학적 요소와 정신적 요소, 사회적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입장이다. 그런데 시스젠더 세상의 제도에서는, 부모의 출생신고에 의하여 성별신고가 되기 때문에, 법적 성별에서 고려되어야 할 정신적 요소, 사회적 요소는 전혀 고려되지 않는 제도적 결함이 있다. 이 결함으로 생기는 법적 성별 불일치로 인한 고통은 오롯이 트랜스젠더 당사자들이 짊어지고, 성별정정을 위하여 어려운 입증 과정을 거쳐야 한다.
성별정정 사건에서 심문기일에 동석하고 나올 때마다 느끼는 감정은 참 복잡한데, 비우호적인 판사를 만날 때뿐만 아니라, 우호적이고 친절한 판사를 만나고 나서도, 심문과정에서 당사자의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과정은 여러 가지 면에서 속상하기도 하고, 이 사회에서 소수자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비애감이 들게 한다. 그래도 당사자에게는 너무나 절박한 법적 문제여서, 일단 법원을 설득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린다.
트랜스젠더 성별정정 사건은 판사의 성향에 따라 법원의 결과가 다르기 때문에 예측하기 어렵다. 그리고 가사비송사건이어서 선고기일도 지정되지 않는다. 어느 날 갑자기 법원에서 결정문이 발송되었다는 문자를 받으면, 마음을 졸이며 전자소송 사이트에 들어가서 결정문을 열어보는 것이다. 그리고 주문에,
“신청인 겸 사건본인의 가족관계등록부 중 특정등록사항란의 성별란에 기록된 “여(남)”를 “남(여)”으로 정정하는 것을 허가한다.”
이 한 문장이 쓰여 있기를 간절히 빌면서 열어본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허가가 된 경우도 있고, 기대했는데 기각이 된 경우도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좁은 문이기는 하지만, 최근에 하급심 법원에서 수술을 하지 않은 상태의 경우에도 성별정정 허가를 하는 경우들이 생기고 있다. 이렇게 서서히 열리는 문틈으로, 당사자들이 원하지 않는 수술이나 삶을 강요당하지 않도록, 당사자들과 함께 문을 계속 밀고 있다. 언젠가는 그 문을 부수고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지 않아도 될 그날이 올 때까지 계속 하는 것이다.
장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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