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과 사과,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정부는 없었다
2024년 12월 31일, 전남 무안 제주항공 참사의 현장에 갔습니다. 우선 광주에서 광주지방변호사회 중심으로 구성되고 있는 법률지원단 회의를 대한변협 생명안전특위 다른 변호사님들과 함께 참관하며 지난 10년간의 재난대응 경험을 나눴습니다. 그리고 무안 국제공항 2층 법률지원단 사무실로 자리를 옮겨 상황에 대한 브리핑을 들었습니다. 유가족 대표단을 만나고 광주지방변호사회와 MOU 체결을 지원하고, 법률지원단 상담공간 확보 등을 위해 돌아다니고, 국토교통부 장관님, 광주시 부시장님, 이태원참사 특별조사위원장님 등 다양한 분들의 방문을 접하기도 하고. 그제 도움받았던 기자님에게 연락해서 잠시 보기도 하고, 서울의 여러 분들과 상황을 공유하기도 했습니다.
이런저런 기술적인 일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보면 너무도 비현실적인 공간들…
임시안치소 얘기가 처음 보도됐을 때 생각했습니다. 세월호참사, 코로나참사, 이태원참사 등등 한두번 문제 됐던 것도 아니었는데 이번에는 적어도 고인에 대한 존중의 방식, 냉동보관을 통한 부패방지 등 최소한의 것들은 지켜지겠지… 아니면 설마… 도대체 왜 이럴 수밖에 없는 걸까요. 그곳에 반성하고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정부는 없습니다.
항공사고의 경우 항공ㆍ철도 사고조사에 관한 법률상 위원회가 조사를 하도록 되어있는데 국토교통부의 책임이 문제 되는 경우, 이 위원회 조사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위원회 자체가 국토교통부 산하일뿐만 아니라 현재 위원장은 국토교통부 전직관료 출신이고, 상임위원은 현 국토교통부 항공정책실장으로 내용적인 준비와 논의를 주도하는 이들이 국토교통부와 사실상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중립성과 독립성이 보장되는 별도의 조사기구를 설치하거나 최소한 위원장과 상임위원을 조사에서 배제하여야 합니다. 위원회 운영규정에도 조사단에서의 이해관계자 제척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법령 개정 등을 통해 유가족단체나 시민사회가 추천한 전문가를 위원회나 조사단에 포함시키는 등의 방식으로 그 중립성과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2014년 세월호참사 이후 제정된 재난참사 관련 특별법령과 관련 지침 등에 의하면 사실상 거의 모든 조사위원회의 회의 및 회의록 공개가 원칙으로 자리 잡았고, 피해가족 등의 회의 참석 및 (위원장 허락 하의) 발언 역시 보장되어 왔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맞춘 관련 지침 등의 개정과 실행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습니다. 항공사고등 관계인에는 유가족, 생존자, 피해가족 등이 당연히 포함되기 때문에 법률에 규정된 의견 진술 기회를 보장해야 합니다. 위원회는 최소한 그 조사계획과 의견진술 절차, 향후 조사진행 정보 제공 계획, 공청회 개최 계획 등에 대해 자세한 안내를 하는 자리를 지체 없이 마련해야 하고 이에 따라 절차를 투명하고 공정하게 진행해야 합니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 179명의 시신이 모두 수습되어 인도 절차가 마무리 수순에 접어 들었고, 개별 유가족 단위의 장례 절차가 진행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향후 절차와 관련해 광주지방변호사회의 자문의뢰에 응하면서 생각해보았습니다. 책임지는 위치에 있는 정부 공무원은 무엇을 고민하고 실행해야 할까요.
무엇보다 참사대응 전 과정에서 피해자의 알 권리, 참여권, 결사권을 실현하기 위한 모든 방안을 강구해야 합니다. 이것이 피해가족들에게 추가적인 상처를 주지 않고 신뢰에 기반하여 참사로 부터 회복으로 나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전제입니다. 참사대응 전 과정에서 정부(관련 공사 등 포함)뿐만 아니라 관련 지자체, 국회, 제주항공측이 정기적 혹은 부정기적으로 피해가족들에게 관련 모든 정보를 제공하고 진행되는 절차에 참여할 수 있도록 안내해야 합니다. 피해가족들이 원활하게 스스로를 조직하고 모이고 논의하고 관련 문제해결에 나아갈 수 있도록 사무실과 관련 비품을 제공하고, 피해가족의 요청이 있는 경우 사무원 채용 등 관련 경비가 지원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합니다.
피해자에 대한 충분한 사회복지적 지원과 심리적 지원 등 의료지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정부, 지자체, 회사 차원 지원의 결정과 전달, 협의 창구를 통합, 단일화시키고 그 전반적인 내용에 대한 충분한 안내를 요구하고 필요한 지원사항에 대한 의견을 상시적으로 수렴해 반영하고, 지원 상황 전반을 수시로 점검해야 합니다. 정부, 지자체, 회사가 조금이라도 서로에게 떠넘기는 식의 행태를 보이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써야 합니다.
진실에 대한 권리의 실현. 참사 관련 책임의 규명 및 그에 상응하는 조치는 피해가족들이 참사로 부터 회복되기 위한 최소한의 전제, 그 출발점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항공사고조사위원회의 조사, 검찰/경찰 수사, 그밖에 국회 현안질의, 국정조사 등의 모든 조사절차가 일관성 있고 상호보완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여야 하고, 피해가족들에 대해 그 진행과정에서의 정보 제공 뿐만 아니라, 최소한의 조사(예비)결과가 나오면 이를 피해가족들에게 소상히 브리핑 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존 법제 내 절차가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경우 특별법 등에 의한 특별조사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그 실행가능성을 즉각적으로 모색해야 합니다.
배상/보상 등 충분한 피해자 구제는 피해가족의 당연한 권리이자 참사 회복과정의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제주항공, 관련 정부기관 등의 책임소재에 대해 냉정하게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하면서 절절한 조치를 계속 강구해야 하고, 제주항공의 관련 보험 등도 피해가족들 최선의 이익을 위해 활용될 수 있도록 점검하고 또 점검해야 합니다.
참사 관련 제도와 관행의 문제점을 종합하여 분석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을 마련하는 과정도 즉각적으로 시작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참사와 관련된 기술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가 어떤 것이 있는지에 대한 진지한 연구조사, 성찰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제대로 된 기억과 추모도 전체 재난 대응의 매우 중요한 한 부분을 구성한다는 인식을 확립해야 합니다. 희생자의 수습과 인도, 장례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고인들에 대한 존중이 충분하지 못했다는 점에 뼈저린 반성 하에 진행되는 장례 절차에 대해서도 지원 정도, 양상, 절차의 적정성을 모니터링 해야 합니다. 기억과 추모 사업을 위한 직간접적인 정보 등을 수집하고 단기, 장기적으로 어떠한 기억과 추모사업이 이루어져야 하는지 미리부터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해나가야 합니다.
희생자 수습과 장례를 어느 정도 마친 상태에서 이제 피해가족들은 기나긴 참사로부터의 회복의 여정을 시작합니다. 책임 회피와 은폐, 무관심과 혐오에 함께 맞서고 이들의 목소리에 조금 더 귀 기울이는 노력을 할 때 이들과 우리, 이 사회는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재난피해자의 권리 보장은 재난참사 극복의 시작과 끝입니다.
* 공감 황필규 변호사는 대한변호사협회 생명존중재난안전특위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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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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