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 없으면 형벌 없다
2024년 1월 15일, 대검찰청 검찰수사심의위원회는 10.29 이태원 참사에 대한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의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에 대한 공소제기 여부 안건을 심의하였다. 당사자인 검찰과 피의자 모두 불기소를 주장하고, 피해자측 대리인들은 이해관계인으로서 수사기록조차 보지 못한 상태에서 기소 변론을 해야만 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 단, 1%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끝까지 싸워야 한다는 마음으로 참여한 수심위였다. 너무도 다행히 결과는 외부전문가 16명 중 9명의 기소의견이었고, 대검찰청은 1월 19일 수심위의 의견을 받아들여 김 청장을 불구속 기소하였다. 경찰 특별수사본부가 김 청장을 불구속 송치한 지 1년 만이자 참사가 발생한 지 447일만이다. 10.29 이태원 참사에서 고위 공직자인 책임자 기소는 이번이 처음이다.
현재 10.29 이태원참사 책임자들에 대해서는 5개의 공판이 진행 중이며, 박성민 전 서울경찰청 정보외사부장 등에 대한 증거인멸 등의 혐의에 관한 공판은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검찰수사심의위원회에 참여하고 책임자들에 대한 형사재판을 모니터링하면서, 사회적 참사에서 책임자들에 대한 처벌(형벌)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본다.
근대를 거치면서 형법상 형벌은 개인적 보복의 성격을 넘어 공적인 제재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 공적인 제재에서 중요한 원칙 중 하나가 책임원칙이다. “책임 없으면 형벌 없다(Keine Strafeohne Schuld)”. 범죄는 타인의 권리 또는 자유에 대한 침해가 있고, 또 침해자에게 그런 침해를 하지 않을 의사결정과 행동의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능력을 사용하지 않는 경우, 즉 책임이 있는 경우에만 인정된다. 책임은 다른 행위를 할 수 있었음에도 위법한 행위를 선택한 행위자를 개인적으로 비난할 수 있는가 즉, 비난가능성에 있다. 종래 형법이론에서 심리적 책임론과 규범적 책임론은 “비난가능성”을 책임판단의 핵심개념으로 보았다.
그러나, 과거에 직면하지 못했던 위험성들이 대두되면서, 형벌의 기능적 책임론이 대두되었다.
기능적 책임론의 대표적 학자인 야콥스(Jakobs)는 사회공동체를 위한 형벌목적의 필요성을 얘기하면서 형벌목적에 “침해된 규범의 안정화”라는 사회적 기능이 있다고 보았다. 형벌은 소극적으로 범죄자를 위하(威嚇)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법을 준수하는 사회구성원들에게 법질서에 대한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 사회규범을 재확인하고 유지하는 목적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능적 책임론에 따르면, 형벌은 범죄의 예방적 차원에서 범인을 재사회화하고, 잠재적 범인에 대해서 범죄의지를 단념하게 하고(위하威嚇), 일반인의 규범의식을 강화하기 위해 책임을 부과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은 예측 불가능한 위험성으로부터의 예방적 보호가 필요해진 현대 사회에서 형벌 및 책임의 개념을 재검토하게 한다.(김준성(2017), 위험사회에서 Jakobs의 기능적 책임론에 관한 재론(再論), 고려법학 제87호 2017년 12월)
중대한 법익이 침해된 사회적 참사에서도 이러한 관점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참사에서 업무상 과실치사상의 혐의가 있는 경우는 대부분이 개인의 작위가 아니라 부작위에 대해 책임을 묻게 된다. 무엇을 할 수 있었음에도 무엇을 하지 않았는가. ‘잠재적 범행에 대한 위하 즉, 작위행위에 대한 위하’의 측면에서만 바라보면 형벌에서의 책임을 소극적으로 판단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침해된 규범의 안정화’라는 측면에서 바라보면, 정부 기관과 행위자들은 부작위로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규범을 침해한 것이다. 따라서, 책임자에 대한 형벌을 통해 규범침해를 확인함으로써 규범을 공고히 하고 사회질서를 안정시켜야 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다음 참사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행위자들에 대한 책임을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처벌해야만 한다.
그러나, 아직 참사 책임자들에 대한 책임과 형벌에 관해 확립된 논리나 법리는 존재하지는 않는다.
대법원은 성수대교 붕괴사고에 대하여 교량의 유지·관리 책임을 맡고 있던 공무원들에 대하여서까지도 업무상 과실치사상죄의 공동정범의 책임을 인정한 바 있으며, 2015년 민중 총궐기 집회 현장에서 살수차 운용 감독을 소홀히 해 고(故) 백남기 농민을 사망케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구은수 전 서울경찰청장에게도 업무상 과실치사 책임을 인정한 바 있다. 두 사례는 법원이 중대한 법익침해가 발생한 경우 재난발생에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하지 아니한 자에 대하여서도 업무상 과실치사상죄의 책임을 인정한 것으로 평가된다.
반면에, 2023년 11월 2일, 대법원은 세월호 참사 당시 구조작업 지휘라인에 있던 해양경찰청 간부들의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확정하면서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 사건의 1·2심 재판부는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 등에 대해 세월호 참사에 대한 예견가능성과 결과회피의무가 있었음에도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점이 입증되지 않았다고 판단했고, 대법원은 이를 그대로 수용했다. 대법원은 해경 지휘부가 세월호 참사 당시 현장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구조조치를 하기 위해 어떤 구체적 의무가 있었는지, 그 의무를 다했는지에 대해 상세하게 다루지 않았다.
그러나, 사회적 참사 책임자들에 대한 처벌에서 “책임”에 대한 판단은 결국 우리 사회가 무엇을 “규범”으로 확정할 것인가와 연관된다. 시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각 행위자들은 무엇을 해야만 했는가에 대한 문제이며, 이는 미래에 동일한 상황이 닥쳤을 때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에 대한 문제이다. 제대로 된 형벌의 부과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에 서 안전에 대한 규범 또한 정립될 수 없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1월 11일 가습기살균제 사건에서 CMIT/MIT 제조·판매사의 업무상 과실치사에 대해 1심 무죄 판결을 뒤집고, 피고인인 임직원들에 대해 유죄판결을 선고하며 그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헀다. “만일 그때로 다시 돌아갔더라면 달리 행동할 수 있었을까? 라는 의문에 대한 답변입니다. 이 질문은 법리적으로는 피고인들의 변호인들이 주장하는 업무상과실 또는 인과관계를 부정하는 논거가 되는 예견가능성 또는 회피가능성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고, 이 재판부가 이 사건의 결론을 내는데 시작점이 되었던 질문이기도 했습니다.”
이번 검찰수사심의위원회에서도 고위 책임자인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의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에 대한 법리적판단에 대해 위 판례들이 언급되었고, 그 해석에 대한 논쟁이 오고 갔다. 검찰이 기소결정을 하였지만 재판에서의 법리적 검토와 판단이 남아있고 이는 다른 책임자들에 대한 공판에서도 필수적이다. 그리고 이번 참사에서 구성된 논리는 책임을 회피를 주장하는 오송 궁평2지하차도참사의 책임자들에 대한 공판 등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사회적 참사의 뜻에 대해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는 “참사의 원인이 ‘사회적’이기 때문에, 또는 참사가 불러일으킨 거대한 파동이 ‘사회적’ 변혁을 끌어내기에 충분하므로 이를 ‘사회적 참사’라 일컫는 것일 수도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10.29 이태원 참사는 수많은 참사를 겪은 우리 사회에 다시금 “안전사회를 위한 규범”에 대해 묻고 있다. 법원은 10.29 이태원 참사책임자들에 대한 재판을 통해 무엇이 안전사회를 규범인지, 무엇이 안전사회를 위한 규범이 어야만 하는지에 대해 제대로 답해야 할 것이다.
조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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