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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 ESG# 기업과인권# 인권경영# 해외한국기업

ESG 열풍에 실종된 인권경영

요즘 미국 월가에서 ESG* 투자가 사그라지고 있다고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ESG 열풍이 한창이다. 이미 2022년 말 국내 ESG 금융 규모가 1,000조 원을 돌파하였고, 한국 기업들은 투자자들의 요구에 맞추어 이사회 내 ESG 위원회, 사내 ESG 전담부서를 설립하여 지속가능보고서를 발표하고 ESG 관련 각종 지표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유엔 기업과 인권 이행원칙’, ‘OECD 다국적기업 책임경영 가이드라인’ 등 국제인권기준을 기반으로 한 ‘인권경영’은 점점 잊히고 있다. 일각에서는 인권이 ESG의 ‘S(사회)’의 범주 내에 포함되니 ‘ESG경영’이 인권경영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고 인식하는 듯하다.

그러나 ESG와 인권경영은 그 목적과 내용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ESG는 투자자가 투자 결정을 할 때 해당 기업의 활동이 환경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지배구조를 고려하여 지속가능성을 평가하고 책임 있는 투자를 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인권경영은 기업이 국제인권규범을 준수하여 자신의 영향력에 걸맞은 인권존중책임을 다할 것을 요구한다. 따라서 인권경영의 핵심은 투자자를 위한 비재무적 정보의 공시가 아닌, 기업이 스스로 공급망, 사업관계 등을 통해 인권침해나 환경파괴에 기여할 잠재적 위험을 파악하고 이를 예방, 완화하는 것과 기업 활동으로 인해 피해자가 발생했을 때 적절한 구제를 제공하는 것에 있다.

이는 기업에 불합리한 부담이 아니다. 기업 활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환경과 지역사회에 대한 부정적 외부효과(externality)를 취약한 지역 주민에 전가하는 대신 내재화하여 자신의 활동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ESG 관련 논의에서 인권은 실종되었다. 정부가 금융위원회를 중심으로 추진하고 있는 ESG 공시 의무화 관련 보도자료를 보아도 인권을 존중하고 환경을 보호해야 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다만 ‘주요 선진국의 관련 규제 강화’로 우리 기업들이 영향을 받기에 이에 ‘대응’하여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지원할 필요만 강조하고 있다. 최근 회계기준원 산하 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가 발표한 ‘한국 지속가능성 공시기준’ 초안을 살펴보아도 인권경영은 의무가 아닌 선택적 공시 항목이다.

더불어 요즘 난립하고 있는 ESG 관련 각종 포럼, 세미나에서도 기업이 실질적으로 환경을 보호하고 인권 존중을 개선할 방안에 대한 논의는 찾아볼 수 없다. 다만 다양한 ‘전문가’들이 이러한 규제에 잘 대응하기 위한 전략들을 내놓고 있을 뿐이다. 인권과 환경은 명분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최근 한국 기업의 해외 인권침해 사건에 대응하며 총 5개의 국내 대기업과 금융기관 본사 ESG 담당 부서에 연락을 시도하였다. 현지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인권단체들과 함께 서한을 작성하여 본사에 피해사실을 알리고, 정보를 요청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이해관계자와 소통을 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5개의 기업 중 4개의 기업은 회신조차 하지 않았다. 이렇듯 ESG 담당 부서들의 업무는 투자자를 위해 비재무적 정보를 제공하고 관련 지표를 개선하는 것이지, 실제로 기업이 연관된 인권침해나 환경파괴에 대응하는 것이 아니다.

결국 ESG가 실효성 없이 기업에 부담만 지우는 담론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기업이 실질적으로 인권과 환경을 보호하는 책임경영을 독려하고 보장하기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 그 노력의 일환으로 공감을 비롯한 국내 인권·노동·환경단체의 연대체인 기업과인권네트워크는 지난 9월 정태호 의원실과 함께 아시아 최초로 기업의 인권환경실사**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발의하였다.

인권경영의 첫 걸음은 이해관계자와의 소통이다. 기업 활동으로 인해 영향을 받는 현지 주민, 노동자 등과의 지속적인 열린 대화를 통해 그들의 상황과 고충을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토대로 인권경영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긍정적인 ESG 지표와 투자로도 이어질 것이다.

 

* ESG: 기업에 대한 비재무적 평가 기준이 되는 환경(Environmental),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 관련 요소

** 인권환경실사: 기업 활동으로 인한 환경과 인권에 대한 실제적, 잠재적 영향을 평가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이를 방지·완화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고, 이러한 조치들이 효과적인지 지속적으로 추적하고, 이러한 절차와 결과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는 일련의 과정

관련 활동소식 : 기업의 지속가능경영을 위한 인권환경보호에 관한 법률안 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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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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