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받지 못했던 이들의 주목할만한 이야기를 만나러 가는 길 – 아웃리치
내 생애 첫 아웃리치* 현장은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는 학교 선배 덕에 올라탄 버스가 데려다 준 2003년의 파주 ‘용주골’이었다. 기억이 희미하지만, 버스는 성매매 집결지에 인접한 경찰서 앞에 정차했고, 경찰로부터 유의사항을 들었다. 경로 안내를 맡은 건 (지금 생각해 보면) 지역에서 업소를 운영하거나 운영하는 일과 관계된 사람이었던 듯하다. 밖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안은 붐볐고, 골목 골목 어둑하지만 단층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집마다 통유리를 통과한 밝은 조명빛이 길을 밝혔다. 영화처럼 과하게 극적인 상황이 난무하지도 않았다. 통유리 안 높은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들, 밖에 서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는 사람들. 다들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다니면서 배포하려고 손에 쥔 물품(피해 상담이나 지원 단체 정보가 적힌 수첩과 콘돔)은 하나도 나눠주지 못했다. 몇 분이 지났을까 누가 유리문을 열어 나를 불렀다. 하나 달라해서 건냈다. 누가 키우는 건지 귀여운 강아지가 유리 문사이로 나와 인사를 나눌 수 있었던 이도 있었다. 유리문 안과 밖을 건널 발 없는 말도 꺼내 내보지도 못했다. 다 나눠주지 못한 수첩과 콘돔은 그냥 배낭에 쑤셔 넣었다. 밖에서 그 문을 쉽게 열고 안으로 들어간 사람은 ‘손님’이었다.
그 장소, 시간, 사람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기회는 없었고, 떠오르는 생각들을 붙잡고 고민할 여력도 모자랐다. 장기적으로 정기적으로 현장에 닿아야 접할 수 있는 것들이 있었을 텐데 그런 활동에 동행할 기회를 얻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기억이 흐릿해지는 중에 파주시의 도시개발 혹은 강제철거 소식이 들려왔다. 오랫동안 동일한 혹은 동일하지 않은 방식의 ‘업소(공간, 산업, 조직)’들이 자리를 바꿔가며 유지되어 온 곳, 다양한 ‘구매자’들을 맞기 위해 더 다양한 ‘종사자’들이 머물러온 곳. 특히 일하고 생활한 이들의 존재가 아무런 공동의 기억없이 기록도 없이 사라져도 되는 걸까. 그래서 이익을 만드는 체계만 돌고 돌며 유지되는 걸까… 질문이 꼬리를 문다.
꼬리를 물던 질문이 희미해지던 차, 다시 찾은 아웃리치 현장은 이룸이 활동을 이어온 이태원이라는 공간이다.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은 10년 넘게 이태원역 근처 동네에 모여있는 가게들을 유흥업과 성산업이란 키워드로 문 두드린 단체다. 이태원 아웃리치는 소위 ‘양키 바’, ‘트랜스젠더 바’라고 불려온 곳과 관련된 이들을 대상으로 한 활동이다. “한 달에 한 번 오는 이룸이에요” 라는 말이 열쇠가 되어 가게 문이 열리면 안에 들어가 짧게 인사를 나누고 소식지(성매매나 성소수자 관련 최근 소식, 단체 소개, 상담정보 등이 담김)와 준비한 물품(화장품, 콘돔, 무릎담요, 수제비누 등 다양)을 전달하고 나오면 문이 닫힌다. 활동가들 틈에 껴 동행한 나까지 얼떨결에 고생한다며 손에 물이나 커피, 감자, 귤, 뻥튀기 같은 걸 챙길 기회도 생긴다. 지난 달 아웃리치 때는 한 업소에 들어가 30분 넘게 들려주시는 생애사에 빠지는 바람에 다들 귀가가 늦었다. 항상 반겨주는 곳만 있는 것은 아니고 문전박대 당하기도 하고, 어렵사리 물품만 전달하는 게 다 인 곳도 있다.
문을 열고 닫은 횟수가 쌓일 수록 단체가 연결고리가 된 사례들도 쌓인다. 오랜 시간 양키바에서 일을 하고 노년을 맞은 이의 이야기를 듣고 필요한 의료지원을 하고 소식을 주고 받는 분의 댁에 앉아서는 한 참 요즘 하시는 식당 일과 나이든 몸에 대해 들었던 적도 있다. 트랜스젠더 분이 업소 안과 밖에서 경험한 폭력피해에 대한 조력이 필요하다고 보고 함께 법률지원을 한 사건을 통해 혐오범죄와 묻지마 폭행 피해자가 경험한 공포를 간접경험한 것도 기억에 남는다. 가볍게 넘겨서는 안될 사건들이 수면위로 드러나는 계기는 당사자의 용기, 활동가의 역량 덕이다. 아웃리치에 동행하며 단체가 안정적으로 현장 활동을 이어가는 것의 중요성을 매번 확인한다. 곤란한 일이 생기면 “쟤들한테 연락해봐”라는 말이 입을 타고 전해지고, 사람들을 엮어준다. 아직 얼굴이 익지 않은 내게도 간단한 법률상담 기회가 생기고, 그 덕에 접하는 이야기들로 이태원이라는 공간을 짐작한다.
5년 전과 현재의 이태원은 또 많이 달라져서 북적대던 언덕의 건물들은 철거되어 스산하고, 리모델링을 이유로 비운 가게가 늘어난 길도 늘었다. 자주 보던 분이 더 보이지 않기도 하고, 문을 닫은 가게를 보면 어디서 뭘 하고 계실까 싶기도 하다. 동네 소식에 밝은 분들을 통해 뒤늦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전해듣는다. 오랫동안 동일한 혹은 동일하지 않은 방식의 ‘업소’들이 자리를 바꿔가며 유지되어 온 곳, 다양한 ‘구매자’들을 맞기 위해 더 다양한 ‘종사자’들이 머물러온 곳. 공동의 기억도 아무런 기록도 없이 사라져도 되는 걸까. 도시의, 자본의 급격한 변화와 무자비한 흐름에(동시에 성매매에 대해 바뀌지 않는 사회의 시선 때문에) 쉽게 의미를 잃고 사라지는 공간과 시간, 사람들을 기록하고 기억하는 활동이 의미가 있는 이유겠다. 머물 곳을 미처 찾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따뜻한 조명을 받을 기회를 더 만들 수 있길 바라보면서 또 ‘아웃-리치’ 동행에 나선다.
* 아웃리치, 사전적으로 ‘기관이나 단체의 공적 서비스를 제공받을 대상자가 있을 현장을 찾아 다니며 물색하고 대상자와 접촉면을 만들어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받도록 유도하는 방법’이라고 해서 사회복지현장 등에서 쓰이는 활동방법으로 이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