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부지방법원 폭동 사태를 보고
2025년 1월 19일 밤, 서울서부지방법원 폭동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개인적으로는 12.3. 계엄만큼이나 충격적인 소식이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구속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법원 건물 유리창과 문을 부수고 들어가, 판사실이 있는 출입문까지 부수고 물건들을 던지며 위협하는 장면이 유튜브로 생중계 되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12월 3일 계엄을 발령한지 한 달 반 정도 흘렀습니다. 김용현 국방장관 등이 내란혐의로 구속되고, 이 시기 즈음이면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이 될 것이라는 저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대통령이 수사기관의 소환조사에 불응하고, 법원에서 발부한 체포영장을 무시하며, 관저에서 바리게이트를 치고 경호처의 물리력을 동원하여 수가기관의 체포 집행을 극렬히 막을 줄은 몰랐습니다.
국민의힘 일부 의원들은 이 틈을 타, 윤 대통령의 주장에 동조하며 탄핵 소추의 정당성을 부정하고, 윤 대통령의 계엄이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극우세력 집회에 동참하여, 그들의 마이크가 되었습니다. 저는 ‘극우세력’의 수가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적지 않다는 것이 걱정스럽습니다. 바로 제 곁에도 있습니다. 경북에 사는 80대 저의 친척 어르신은, 가끔 제가 방문하면, 늘 극우 유튜브를 듣고 계십니다. ‘부정선거’를 믿고, ‘윤석열 대통령은 이승만, 박정희 다음으로 훌륭하며 탄핵에서 꼭 살아 돌아 올 것이다.’ 확신하십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 이재명 민주당 당대표에 대한 거부는 증오심에 가깝습니다. 정치 의제로 대화를 하지 않는 것이 최선입니다.
그런데, 이번 사태는 저에게 예전과 다른 감각으로 다가옵니다. 광화문에 나와 윤석열 대통령을 옹호하는 사람들, 그들을 선동하는 목사들은, 반동성애를 외치며 광화문에 나온 사람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2007년 공감에서 일을 시작한 이래, 차별금지법을 반대하고, 서울인권조례 공청회에 몰려와 물리력으로 공청회를 무산시키고, 학생인권조례를 주민발의로 폐지시키고, 퀴어문화축제 때마다 집회를 방해하며 성소수자들에게 혐오와 저주의 말을 퍼붓던 사람들을 상대하며 활동을 해야 했습니다. 요즘 그들이 집회를 하는 광화문을 지나가거나, 하필이면 공감 사무실과 가까운 헌법재판소를 지날 때 괜히 시비가 붙을까봐 긴장하는 이유는, 그들을 상대하며 쌓인 트라우마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번 법원 폭동사태는 이들의 폭력성의 임계치가 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위헌적 계엄과 내란으로 탄핵심판을 받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과 그 측근 변호인들이 궤변에 가까운 주장을 하고, 그 궤변을 언론은 그대로 보도하며, 국민의힘 여당 의원이 ‘백골단’을 국회에 들이고, ‘사기탄핵’이라고 주장하면서 관저 앞까지 나와 체포집행을 막아서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들이 위헌적 계엄 발령을 한 대통령을 비호하는 장면들이, 2025년 대한민국의 모습인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지금 터져 나오는 사건들은, 그동안 한국사회가 암묵적으로 묵인했던 혐오와 폭력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을 방관했을 뿐만 아니라, 선거철만 되면 이들 앞에 찾아가 ‘차별금지법 반대’, ‘동성애 반대’ 서약을 했던 민주당의 유력 정치인들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이제 현재의 사태에 심각성을 깨닫기 시작한 사람들이 많아지고, 여러 가지 분석과 진단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퇴진과 조기 대선 이후에도, 살아가야할 세상에서 우리는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소수자, 타자에 대한 혐오와 폭력을 더이상 한 집단의 의견으로 받아주고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정치적으로 눈치보며 침묵하는 정당, 이용하려는 정당, 대선을 앞두고 그들이 보일 모습이 이미 눈에 그려집니다. 한국사회가 기로에 서 있습니다. 당분간 낙관적인 전망으로 글을 맺을 수 없는 것이, 요즘 저의 가장 큰 고민입니다.
장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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