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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 아이돌# 악의적 여론전# 언론# 인격권# 인권# 주체성

K팝 아이돌 전속계약에서 ‘고도의 신뢰관계’가 중요한 이유 – ‘뉴진스(NJZ) 가처분 결정’ 비평

최근 법원은, 뉴진스(NJZ) 멤버들에 대하여 ㈜어도어가 제기한 기획사 지위 보전 및 연예활동 금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였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25. 3. 21.자 2025카합20037 결정).

뉴진스(NJZ) 멤버들은 현재 활동을 중단하고, 항고한 상태이다. K팝 팬으로서 지난해부터 이 사건을 주의 깊게 보고 있는 나는, 이 사건이 K팝 산업과 대규모 엔터테인먼트 기업의 성장에 가려진 아이돌의 주체성과 인권 문제를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7장기 전속계약

아이돌은 데뷔와 동시에 기획사와 ‘7년’의 전속계약을 체결한다. 보통 ‘7년’으로 계약을 체결하는 이유는 문화체육관광부장관 고시 ‘표준전속계약서’에서 ‘7년’을 초과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획사 입장에서는 전속기간을 최대한 장기간으로 체결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에, 첫 데뷔 때는 기획사의 입장에서 ‘7년’이 관철된다. 그런데, 왜 ‘7년’이어야 하는지는, 그 근거를 찾기가 어렵다.

문제는, 전속계약서에 가수의 “7년”이라는 전속의무는 구체적인데 반하여, 기획업자의 매니지먼트 권한 행사에 따른 의무나 제한은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런데, 아이돌의 전속활동은 계약서에서 명문화되지 않은 ‘빈 내용’에서 대부분 이루어진다. 표준전속계약서에도 “가수는 기획업자의 매니지먼트 권한 행사에 따라 대중문화예술용역을 성실히 제공할 의무”를 지고, “정당한 사유 없이 대중문화예술용역의 제공을 거부하여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 그 용역 제공의 횟수나 시간의 제한이 없고, 제공해야할 용역의 범위 등이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다. 아이돌 입장에서는 그저 기획사를 믿고’, ‘데뷔의 꿈을 이루기 위해, ‘7의 장기 전속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아이돌은 자신의 일(또는 삶)에 대한 결정권한이 얼마나 있을까

아이돌은 본업인 음악활동 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요구받는다. K팝 성공의 공식이 된 충성도 높은 팬덤을 구축하기 위해, 아이돌은 활동기 외에도 콘텐츠를 끊임없이 제공해야 하는데, 자본이 있는 기획사들은 자체 콘텐츠를 제작하여 제공하기도 하고, 대부분의 아이돌은 팬 소통 플랫폼이나 SNS를 통해 일상을 공유한다. 점차 이러한 것들도 유료화 되는 추세이기 때문에, 아이돌의 일상은 상품화되고, 노동과 일상의 경계가 흐릿해진다. 아이돌의 은 계약상의 대중문화예술용역의 범위를 넘어 ’7년을 아이돌로 살아가는 일이 된다.

표준전속계약서에는, “가수는 기획업자의 매니지먼트 활동에 대하여 언제든지 자신의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지만 현실에서는 그대로 작동하기 어렵다. 아이돌은 기본적으로 ‘단체 활동’을 전제로 하고 있고, 대규모 비용이 투여되는 상황에서 스스로의 활동에 대한 결정권한이 제약될 수밖에 없고, 기획사의 권한 행사에 따른 일정을 소화할 수밖에 없다. 그룹이나 연차마다 차이는 있지만, 음악 제작이나 기획, 그룹 콘셉트 설정에 있어서도 기획사가 주도한다.

투자금의 규모가 점차 커지는 추세 속에서, 아이돌이 수행해야 할 용역 제공의 의무와 시간도 비례해서 커진다. 무리한 투어나 행사 일정, 잦은 부상과 정신건강 문제 등 K팝 아이돌의 장시간 노동 문제는 악명이 높다. 과연 이러한 현실에 대해, 우리 제도는 어떤 보호 장치가 있는가.

제도적 개선의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 아동/청소년의 장시간 노동, 착취로 인한 폐해로, 지난 21대 국회에서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에 12세/15세 미만의 용역제공 시간의 제한을 두려고 하였으나, 한국연예제작자협회 등 기획사를 대변하는 단체들의 반대에 의해 무산되었다. 아이돌의 입장에서 제도개선이 더딘 이유다.

 

자유의사에 반하는 전속활동의무 강제는 인격권 침해

제도적 공백 속에서, 아이돌의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전속계약 존속의 조건으로 ‘고도의 신뢰관계’를 유지할 법적 책임을 기획사에게 물어야 한다. 대법원 역시 전속계약의 성질상 그 목적 달성을 위하여 당사자 사이에 “고도의 신뢰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전제한 뒤, “신뢰관계가 깨어졌는데도 계약의 존속을 기대할 수 없는 중대한 사유가 있는 경우가 아니라는 이유로 연예인에게 그 자유의사에 반하는 전속활동의무를 강제하는 것은 연예인의 인격권을 지나치게 침해하는 결과”가 되므로, “계약당사자 상호 간의 신뢰관계가 깨어지면 연예인은 전속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판결한 바 있다(대법원 2019. 9. 10. 선고 2017다258237 판결).

특히, K팝 아이돌은 전속계약 체결 당시, 미성년자가 많고, 기획사와의 관계에서 ‘을’의 지위일 수밖에 없으며, 기획사에게 유리한 ‘7년’이라는 장기간의 전속기간을 체결한다는 점에서, 고도의 신뢰관계를 유지할 의무와 법적 책임을 기획사에게 부여하고, 이것이 깨진다면 아이돌에게 해지권을 인정하는 것이 법적 형평에 맞는다고 생각한다.

 

아이돌의 금기를 깬 장면들

이 사건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이돌에게 금기시 되던 것들이 깨지는 장면들이었다. 2024년 9월 11일, 뉴진스 멤버들은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통해, 하이브와 방시혁 의장에게, “민희진 대표가 있는 원래의 어도어”로 복귀 시켜달라고 요구하였다. 보통은 기획사와의 신뢰관계 파탄으로 전속계약 분쟁이 이루어지는데, 이 사건의 특이점은 뉴진스 멤버들이 민희진 대표 시기의 기획사에 대한 신뢰관계가 확고하여 그것을 유지해달라는 요구가 핵심 쟁점이었다는 점이다.

뉴진스 멤버들 입장에서는 전속계약 체결 당시 대표가 민희진이었고, 뉴진스의 총괄·기획 프로듀서로서, 음악적인 측면과 영업실적의 측면에서 압도적인 성과를 내고 있었는데, 자신들의 연예활동을 지원하며 고도의 신뢰관계를 형성했던 대표와 기획사가, 현재는 전속계약 체결 당시의 기획사와는 인적구성이 완전히 다른 회사가 된 것이다.

1심 가처분 결정은, 기획사가 ‘무명의 연습생들이었던 채무자들의 성공적인 연예활동을 위하여 오랜 기간 동안 전폭적 지원과 노력’을 하였고, ‘정산의무 등 중요내용을 위반한 것이 없다’는 점을 가처분 인용 결정을 이유로 들었는데, 문제는 그 정산이 가능하도록 전폭적인 지원과 노력을 한 대표 및 임직원을, 하이브 임원진이 멤버들의 의사와 이익에 반하여 교체하였다는 핵심적인 사실이 생략된 것이다.

 

기울어진 언론 지형과 법적 분쟁에 동원된 악의적 여론전

하이브는 법적 분쟁에 법정에서의 정당한 공방이 아니라 사건과 관련이 없는 개인의 사적인 메시지를 언론에 흘리고, 언론의 집중 포화를 받도록 하는 행태를 지난해 장기간 반복하였다. 뉴진스 멤버들의 연습생 영상과 민감한 개인정보들이 특정 연예매체와 사이버렉카에 유출되어, ‘단독’이라는 제목을 달고 보도가 되었다. 다른 매체들은 단독 기사를 받아쓰기에 바빴고, 그 출처나 프라이버시 침해에 대해서 지적하거나 자정하려는 언론사는 찾기 어려웠다. 뉴진스 멤버들은 사소한 이슈에도 매일 수 십 건에서 수 백 건에 이르는 보도에 시달렸고, 비자문제가 튀어나와 ‘불법체류’ 프레임에 외국인 혐오 조롱까지 당했다. 이런 상황에서 뉴진스 멤버들이 하이브 임원진으로 경영진이 교체된 기획사를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을까.

아이돌의 입장에서 안전하다고 느낄 수 없는 기획사에서 전속활동을 강제하는 것은 아이돌의 인격권을 지나치게 침해하는 것이고, 가처분 결정으로 인한 활동금지는 아이돌의 직업의 자유를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아이돌 인권의 한 페이지를 여는 계기가 되길

뉴진스(NJZ) 멤버 다섯 명은 이 여정이 쉽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이 믿는 가치와 서로를 지키기 위하여 목소리를 냈다고 한다. 아이돌도, 특정 그룹의 구성원이나 연예인이기 전에, 존엄과 권리를 가진 한 인간임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프라이버시가 존중되어야 하고, 누구와 작업하고 예술 활동을 할 것인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개인정보 보호와 안전한 근무환경을 보장받는 것은 기본이다. 기획사가 이러한 의무를 위반한다면 계약을 해지할 수 있어야 한다. 뉴진스(NJZ)의 싸움이 아이돌 인권의 한 페이지를 여는 계기가 되길 응원하는 이유다.

장서연

# 빈곤과 복지# 성소수자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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