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떻게 국민이 되었습니까?_이한숙/ 이주와 인권연구소 소장
정부가 코로나19 외국인 확진자에게, 확진자가 외국인이면, 치료비를 청구하겠다고 한다. 이를 위해 여당은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숨이. 턱. 막혔다. 당신들이 말하는 그 외국인은 누구인가?
인터넷 뉴스를 찾아 뒤져본다. “순수 외국인”에게는 치료비를 부담하도록 하고, 어쩌고. 순수? 국어사전을 찾아본다. “대상 그 자체에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이 없음…” 순수와 외국인을 엮어 보니 말이 안 만들어진다. 갸우뚱 하고 다시 인터넷 뉴스를 찾아 뒤져본다. “이미 건강보험에 가입한 장기체류 외국인 등에 대한 치료비 지원은 계속” 어쩌고. 다시 국어사전을 찾아본다. “가입”이 무슨 뜻이었지? “…대가를 지불하고 특정한 서비스를 받는 일원이 됨”
앗, 이런. 건강보험 가입이 안 되는 미등록체류자, 건강보험 지역가입이 안되기 때문에 사실상 건강보험 가입이 불가능한 6개월 미만 체류자, 유학생, 인도적체류허가자와 그 가족 외의 기타(G-1) 비자 소지자, 그리고 건강보험 의무가입 대상이지만 건강보험료를 못 내고 있는 이주민 모두가 ‘순수 외국인’에 포함되고 말려나.
얼마 전 경기도의 한 센터를 방문했다. 중국 동포인 상담원과 건강보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도중에 목발을 짚은 사람이 문틈을 기웃 들여다보았다. 방문취업, H-2 비자를 가진 중국동포 K씨였다. 수술을 받고 몇 달째 일을 못하고 있다고 했다.
정부도 지자체도 ‘외국인’ 중에 영주 비자와 결혼이민 비자를 가진 사람만 재난지원금 혹은 재난기본소득 지급대상에 포함했다. 그 틈을 메워보려 했을까? 민간기금이 ‘외국인’을 위한 긴급지원금을 배분했다. 이 센터도 시를 통해서 500만 원을 배분받았다. 센터는 당장 생계가 급한 K씨를 위해 긴급지원금을 신청했다. 그러나 K씨는 선정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시는 건강보험료를 기준으로 소득을 계산해서 지원금 지급대상을 결정했다. 그런데 K씨의 건강보험료가 너무 많았다. ‘외국인’ 지역가입자는 그 처지가 어떻든지 지난해 평균 이상의 건강보험료를 내야 한다.1) 2020년 그 금액은 123,080원이다. K씨에게도 이 금액이 부과되었다.
센터 상담원은 시 담당자에게 이런 상황을 설명하며 호소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가족 여러 명에 이 보험료면 괜찮지만 한 명에 이 보험료는 안 된다고 했다. 국민이라면 같은 집에 사는 가족들과 넓은 범위에서 한 세대를 구성할 수 있지만 ‘외국인’은 배우자와 미성년 자녀만 세대원으로 등록할 수 있다. 늙으신 부모가 있어도, 장애가 있는 성년 자녀가 있어도 한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했고, 각각 123,080원을 내야 한다.
K씨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모두 같은 이유로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결과적으로 센터가 추천한 여덟 가족 중 자녀가 여러 명인 세 가족만 선정되었다. 대상을 찾지 못한 긴급지원금은 회수되었다.
센터는 당장 생계가 급한 K씨에게 센터 자체 지원금 40만원을 전달하기로 했다. 그 소식을 들은 K씨 왈, “그래도 몇 개월 치 건강보험료는 납부할 수 있겠네요.” 보험료를 안내면 체류자격 연장이 안 된다. ‘외국인’은 다음 달 분 보험료를 선납해야 되는데 25일 납부일을 넘기면 다음달 1일부터 바로 급여가 제한된다. 반면 국민은 6개월 체납 전까지는 급여 제한을 받지 않는다. K씨는 몇 달을 더 버틸 수 있을까?
그 날 그 센터 상담원이 가장 많이 한 말은 “가슴이 아프다”였다. 루게릭병에 걸린 형, 팔순이 넘은 어머니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아들, 교통사고로 여섯 살 아이처럼 돼버린 남편…, 그들을 부양하며 건강보험료를 대신 내주던 가족과 친척들이 중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가장 먼저 해고되는 현실을 담담히 일러주며, 돌아가고 싶어도 이미 갈 곳이 없어진 사람들을 말하며, 연신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그리고 며칠 후 정부가 코로나19 확진자가 외국인이면 치료비를 청구하겠다, 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사람들의 목을 조르고, 팔을 비틀며 벼랑 끝에 내몰아 놓고 이제 툭 밀어버리려 하는 것 같다. 그 사람들이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누군가 날 때부터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구박하고 천대하며 쫓아내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이런 뻔뻔한 차별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이런 정책을 머리 맞대고 논의하고 있다는 당정청 관계자들에게, 반가운 소식이라며 보도하는 언론사 기자들에게, 그리고 많은 국민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당신은 어떻게 국민이 되었습니까?”
1)영주 비자와 결혼이민 비자를 가진 ‘외국인’은 국민과 마찬가지로 재산과 소득에 따라 보험료가 부과된다. 그 외 ‘외국인’에게는 최소한 지난해 평균보험료 이상이 부과된다. 종교, 인도적체류허가 등 일부 체류자격에 따른 감면이 있지만, 노인, 장애인, 휴직자 등 국민이라면 감면 대상이 되는 사유가 ‘외국인’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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