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자 인터뷰] ‘공감’과 함께 걷다 – 이혜진 기부자님
(※ 이 기부자 인터뷰는, 이혜진 기부자를 마주한 한 ‘공감’ 인턴의 삶에 대한 기록의 형식을 취했다.)
┃▷ 재생 : 두드리다
3월부터 시작한 ‘공감’에서의 인턴 활동에 대해 고민들이 늘어갈 때쯤, ‘희망제작소’ 교육센터의 연구원인 이혜진 기부자와 인터뷰 약속을 잡았다.
나는 작년까지 공익변호사라는 진로와 ‘공감’에서의 삶을 원했지만,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어쨌든 ‘공감’ 내에서 일하며 미래를 고민해 보고 싶었다. 한편으로는 전공인 ‘법’의 끈을 놓아 보기로 했다. 내가 보조하게 된 업무는 기부자 관리와 도서정리, 연간보고서 교정 등이었다. 초반에는 ‘공감’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들떴지만, 업무가 루틴해지면서 내가 이 단체를 위해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게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경험은, 내가 크게 데어 한때 이별을 선언했던 ‘법’이란 것에 대해 살짝 미련이 생기는 계기도 되었던 것 같다.
대학교 1학년의 첫사랑의 기억처럼 얽혀 있는 나와 ‘법’은, 과연 다시 만나서 추억을 완성할 수 있을까. 나는 시민단체 활동가를 만나면, ‘법’의 유용성에 관해 듣고 싶었다.
┃┃ 일시정지 : 마주하다
이혜진 기부자는 ‘공감’을 2006년부터 후원해 왔고 최근에는 ‘아름다운 재단’의 ‘미래세대 나눔’ 부문으로도 기부 영역을 늘렸다. 그는 자신이 ‘공감’ 소라미 변호사의 대학 후배라고 말해 주었다. 그는 소 변호사가 대학 때 활동한 것을 들어 왔고 자신도 법에 관심이 많았기에, 언론에서 ‘공감’과 소 변호사의 활동을 접하게 되면서 기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소개를 부탁했다. “희망제작소의 모토는 ‘지역・현장・실용’이고, 핵심적인 내용은 ‘사회혁신’・‘마을 만들기’・‘사회적 경제’・‘참여 거버넌스’ 이렇게 4가지입니다. 저는 교육센터에서 ‘참여 거버넌스’를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현장에 적용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시민학교’와 ‘지역 리더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는데 요즘은 주민참여 예산제에 대한 지역 리더 교육으로 굉장히 바빠졌어요.”
◀◀ 되감기
▶▷ 2배속 재생 : 돌아보다
활동가의 삶을 사는 그의 이력을 들어보았다.
“교육학을 전공했고, 국회 교육위원회의 국회의원 비서관으로 일했어요. 법을 만드는 국회, 그중에서도 교육을 다루는 교육위원회에 있었지요. 그러면서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이타적으로 활동하고 싶다’, ‘시민사회운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작년 9월에 ‘희망제작소’에 입사했는데, 저 역시도 끊임없이 실천・시도・도전하는 과정에 있어요.”
입사에 가족들의 반대가 있었는지 묻자 다음과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대학 때부터 사회운동에 관심을 두고 활동하는 과정을 가족들이 봐 왔어요. 국회 역시 법과 제도를 가지고 정당 중심으로 돌아가는 공간이기 때문에 일했던 곳이고, 여기도 사회운동을 하는 곳이라고 생각해서 크게 걱정은 안 하더라고요.”
인생의 지표나 좌우명을 물어보자, 故 노무현 대통령의 묘비에 쓰여 있는 이 문구를 들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깨어 있는 시민’, 그리고 ‘조직된 힘’. 후자는 시민사회운동의 조직화로서 법과 제도의 문제이고, 전자는 헌법적 가치에 대해 의식 있는 시민들이 늘어나는 것이리라. 그에게도 대학 졸업 후 바로 시민단체의 활동가가 될지, 아니면 좀 더 공부하고 자기 분야를 가지고 일할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일단 교육학 석사과정을 밟고 국회에서 일하다 ‘희망제작소’로 왔다. 국회에 있을 때는 후자에 더 집중했고, 지금은 시민을 ‘깨어 있도록’ 하는 전자의 주제를 더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요즘은 일반 사람들의 의식 수준이 민주적으로 바뀌면 제도가 뒤따라온다는 생각을 갖고 있으나, 의식과 제도 두 가지는 상보적인 것이며 융화되어 한 단계씩 사회를 성숙시킨다고 덧붙였다.
┃┃ 일시 정지 : 보완하다
1500여 명(‘공감’) 대 7400여 명(‘희망제작소’). 두 단체의 기부자 수는 얼핏 많아 보이나 활동을 충분히 보장하기에는 아직 부족하며, 활동가들의 삶은 경제적․사회적으로 비주류이다. ‘희망제작소’에서의 본인의 삶도 바쁘고 어려울 텐데, 활동가로서 타 단체에 기부하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에게 ‘공감’은 ‘보람’, 기부는 ‘비타민’이란다. 그는 ‘아름다운 재단’과 ‘공감’의 활동에 대한 공감과 지지를 기부로써 표시하는 것이다. 그가 기부하는 기준은 ‘①교육 관련 활동을 하는 단체들, ②내가 하지 못하지만 필요한 활동을 하는 단체들’이라고 한다. ‘공감’은 ②에 속하고, 그는 ‘아름다운 재단’의 ‘미래세대 나눔’ 부문을 포함해 ①의 영역에도 다양한 후원을 하고 있었다.
‘공감’의 활동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는 그에게 관심 영역을 물었다. 그는 2008년에 ‘공감’이 강남구 포이동 비닐하우스촌 철거민의 주민등록전입신고수리거부처분 취소소송을 대리해 승소판결을 받았던 사건을 언급했다. 그러다 그는 문득 ‘공감’에 기대하는 바를 피력했다. 그것은 ‘공감’이 좀 더 공익소송을 강화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에게 ‘공감’과 ‘공감’의 구성원들은 자신이 바라는 사회를 함께 만들어 갈 동반자이므로, 자신이 가지 않은 공익소송의 길을 ‘공감’이 집중하여 걸어 주기를 원했다. 변호사그룹이 가장 잘할 수 있고 그들만 할 수 있는 것이 제도권에서 싸우는 것이며, ‘공감’이 싸워서 이기거나 멋있게 지는 것 자체로 법률가들에 대한 교육을 실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재생 : 다시 걷다
나는 이혜진 기부자와 개인적인 진로 고민도 나누었다. 그는 교육 분야의 전문 활동가가 자신에게 의미 있고 맞는 직업이라 생각해 이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사회와의 간극을 잊지 않으면서 자신의 주제인 ‘교육’에 천착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한편 젊은이들에게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을 알기 위해서 많이 경험하고, 많이 방황해라. 많이 경험할수록 방황의 시간은 짧아진다.’고 말하고 싶어 했다. 결국, 변호사의 삶을 살지, 특정 분야 활동가의 삶을 살지는 집중하는 영역의 차이이며, 무엇이 자신에게 맞는지는 끊임없이 경험하고 방황하는 시간을 거치며 알아가야 한다는 것이 우문에 대한 그의 현답이었던 것 같다.
최근에, 첫사랑과 결혼하셨다는 한 교수님의 강력한 추천으로 한 멜로 영화를 보게 되었다. 이 영화는 첫사랑이었던 남녀가 각자의 길을 가는 것으로 끝을 맺는데, 이유는 그것이 각자에게 행복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 결말에 대해 못내 아쉬움이 남았다. 첫사랑인 ‘법’에 대한 온갖 애증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어떤 길이 행복일지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혜진 기부자와의 만남을 통해 어떤 책의 구절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것은 ‘한 명의 힘은 미약해 보여도 쉼 없이 흘러가다 보면 거기 바다가 있을 것이다(배금자, ‘이의 있습니다’중)’였다. 생각한 것을 실행하며 한 걸음씩 걷다 보면 활동가들은 결국 모두 다시 만나게 될 것이므로.
‘공감’과 함께 걷는 그를 떠올리며, 나도 다시 한 번 내디뎌 본다. 2012년 4월, 여기는 ‘공감’이다.
글 : 이상효(15기 인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