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자 인터뷰] 기부, 즐겁지 않으면 안되잖아요 – 박노민 기부자님
통장 잔고 만원. 또 갈등의 계절이다. 기부금으로 빠져나가기 전에 먼저 찾을까. 때마다 찾아오는 ‘보릿고개’, 은행 인출기 앞에서 고민에 빠진다. 필자가 어떤 단체에 기부를 하던 때의 일인데, 결국 기부를 중단하고 말았다.
“부담될 정도로 많은 돈 내는 것도 아니고, 좋은 데 가서 밥 한번 덜 먹으면 되는데요.” 용돈으로 기부하는 게 부담스럽지 않은지 묻자 ‘그까이꺼’라고 대답하는 ‘완소’ 기부자 박노민님을 만났다.
박노민님은 2005년 고등학교 졸업 직전에 기부를 시작했다. 봉사활동을 많이 하고 “주변을 돌아보는 사람이 돼라”고 말하는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기부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그에게 대학 들어가면서 용돈이 늘어난 것은 좋은 ‘기회’가 됐다.
공감 정기 기부자가 된 것은 2008년이다. “누군가 해야 할 일을 해주는 공감이 고맙고, 당연히 어느 정도 지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에게 중요한 것은 기부 행위보다 기부할 때의 마음이다. “기부, 즐겁지 않으면 안 되잖아요.”
공감에 공감하다
박노민님은 이번에 대학을 졸업한다. 법학을 전공했는데 “진짜” 재미있었다. 법을 알면 할 수 있는 일이 많고, 지식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 자격이라는 생각에 지금은 사법고시 2차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법학도로서 특히 기억에 남는 공감소송은 ‘베트남 여성 재생산권 침해 소송’이다. 강의를 들으면서 관련 레포트를 쓰기도 했는데, 법리나 판례로 조목조목 따지면 승소하기 어려운 소송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더욱 화가 났다고 한다.
“공감의 활동 하나하나가 단편적인 것이 아니라, 파급효과가 크고 사회를 전체적으로 바꾸는 활동이라는 점에서 응원을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박노민님은 ‘공감을 지원해야 한다’는 당위성 때문이 아니라, 공감을 알고 나서 자연스레 활동을 지지하게 됐다. “공감 5주년 행사 때 공감 구성원들을 보면서 제멋대로 친근감을 느꼈어요. 이럴 때가 아니다, 공부 열심히 해야겠다, 이런 생각이 들었죠.”(웃음)
공감 기부자가 된 후 달라진 것이 있다. 예전에는 도움이 절실해 보이는 외국인이나 성매매 여성 등이 눈에 들어왔는데, 요즘은 공감이 꾸준히 진행하고 있는 법률교육과 주민소송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공익소송이나 법률교육은 윤리적 차원에서 당연히 모든 변호사들이 해야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사회적으로 변호사들에게 요구되는 윤리가 없으니까 일회적으로 시간만 때우는 식이에요. 공감이 혼자 ‘못할 일’을 하고 있는데 정말 힘이 돼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조곤조곤한 말씨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던 박노민님이 언성을 높였다. 그가 공감에 바라는 점은? 활동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일하는 환경이 개선되는 것이다. “정말, 정말, 정말, 그런 일을 덜어줘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무엇을’보다 ‘어떻게’
그는 ‘무엇을’ 할지 미리 정하지 않고 그때그때 ‘어떻게’ 할지 정한다고 했다. “우리가 사는 사회를 좋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면 작은 일이라도 하고 싶어요.” 그는 채식을 한다. 어떤 강한 신념 때문은 아니다. 먹을 것이 없어 죽어가는 사람들도 있는데, 고기 1인분을 얻는 데 필요한 사료가 곡물 22인분이라는 사실을 알고부터 채식을 시작했다. 그게 ‘정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처음 1주일은 족발이 너무 먹고 싶었어요. 그 다음 1주일은 피자가 너무 먹고 싶었고요.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기를 들었다 놨다 했는데 한두 달 지나니까 괜찮아요.” 그토록 좋아하던 카푸치노와 치즈를 못 먹게 된 것도 ‘그까이꺼’라는 듯 말했다.
공정무역 커피를 마시고 일회용 컵을 사용하지 않는 것도 ‘그까이꺼’다. 버스 정류장에서 처음 만났을 때 박노민님은 짐을 한가득 들고 있었다. 등에 멘 가방에는 책이 한 가득이었다. 한손에는 가방, 한손에는 컵을 들고 있었다. 채식 때문에 사먹는 것이 여의치 않아서 매일 도시락을 싼다. 학교에서 마실 공정무역 커피와 차도 가지고 다닌다.
함께 밥 먹고 차 마시고 이야기하면서 공감 운영팀은 마치 오랜 친구처럼 박노민님과 ‘수다를 떨었다’. 기부자님들을 만날 때면 늘 부끄러워지곤 하는데, 이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급기야 안모 간사는 ‘질문하기가 부끄럽다’고 실토했다.
가방에 넣지 않고 들고 다니던 컵의 비밀은 인터뷰가 끝나고서야 밝혀졌다. 마시다 남은, 이미 식어버렸을 차가 담겨 있었다. 빈 컵에 부으라는 말에도, 그는 남은 차를 ‘원샷’하고서야 컵을 가방에 넣었다.
1년 넘게 공감을 응원해 준 박노민님은 6월에 2차 시험을 치른다.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공감 사무실에서 특별인턴(‘특별한’ 인턴이라는 뜻도 있다)으로 만날 날을 기다리면서, 공감 구성원 모두가 응원을 보낸다.
글_ 10기 인턴 고승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