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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기부자 인터뷰] 불편함도 직시할 때, 내가 갖고 누리는 것에 감사할 수 있죠 – 전남대학교 2009 동계세계교육기행 최우수 봉사팀과 조복희 교수님 (기부자님)


 



 


“큰일을 해내시는 여러분에게 감사드리며, 저희의 작은 정성이 조금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 기부금은 전남대학교 간호대학생들이 2009년도 동계 전남대학교 세계교육기행사업 지원으로 꼴카타 마더데레사 하우스 자원봉사를 하고, 귀국평가에서 최우수 봉사상과 함께 받은 부상을 값지게 사용하자는 뜻을 모아 마련한 것입니다. 힘없는 사람들을 위한 ‘공감’의 활약을 소망합니다.”



사연을 접하고 일렁이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특별하고 다양한 기부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학생들이 봉사활동을 다녀와서 받은 상금을 기부한 경우는 없었다. 더구나 수도권 밖에 있는 기부자들과의 만남에 목마르던 차였다. 인터뷰 요청에서 섭외까지 일정은 다소 촉박하였지만 끝끝내 닿은 빛고을 광주는 그래서 더 아름다웠다.


 


조복희 기부자는 인터뷰 요청을 받을 때부터 ‘내게 자격이 있는가’ 라는 생각을 거듭했고 스스로의 삶을 성찰하게 되었지만 ‘이 또한 하나의 기여’라는 생각으로 인터뷰를 수락했다고 말한다.



 


 



 


 


그는 전남대학교 간호대학 학생 7명과 함께 2010년 1월 23일부터 17일 동안 전남대학교 세계교육기행사업 지원으로 꼴카타 마더데레사 하우스 자원봉사를 했다. 귀국평가에서 최우수 봉사상을 받았고, 그 상금을 공감에 기부했다.



그는 2006년 안식년 때 케냐에서 자원봉사 했던 경험을 학생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에 학생들에게 마더데레사 하우스 자원봉사를 제안했다고 한다.



“간호사는 사람을 보살피는 직업입니다. 질병으로 몸이 아픈 사람들을 돌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죠. 그런데 신체뿐 아니라 마음이 아픈 분들도 많고, 그렇기 때문에 전인간호가 중요합니다. 전공 교육에 투철한 것이 저의 일차적 책무이지만 학생들에게 정서적으로도 풍부한 경험을 주려고 많이 노력해요. 학생들은 지금 새로운 것에 대한 흡수력이 높은 시기입니다. 나는 학생들이 지치고 힘들고 위기감을 느낄 때 끄집어내 떠올리며 다시 기운을 회복할 수 있는 어떤 자산을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



그의 말에 교육자로서의 신념과 학생들에 대한 애정이 묻어났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강민경, 윤서경 학생이 연구실을 찾았다.


 


 



 


 


[공감] 교수님께서 먼저 제안을 하시고 다음에 학생들이 움직였다는데, 아무리 교수님 말씀이더라도 마음을 움직일 뭔가가 없다면 안 될 거 같거든요?
[윤서경 기부자(이하 ‘윤’)] 사실은 저희끼리 여행을 해보고 싶었는데, 그 때 마침 교수님을 뵈었고, 교수님이 인도 마더데레사 하우스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어요.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죠. 어떤 주제를 가지고 하는 여행이 더 의미가 있을 것 같았어요. 이전에도 교수님과 함께 중국 해부학 연수를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정말 좋았거든요. 잘 이끌어 주셨고요.


 


[공감] 인도에 가서는 주로 어떤 활동을 했나요?
[강민경 기부자(이하 ‘강’)] 개인적으로는 호스피스 쪽에서 활동하고 싶었어요. 그렇지만 저희가 초보이고 장기봉사자도 아니어서, 주로 ‘프렘 단’과 ‘다이야 단’에 배치되었죠. 저는 ‘다이야 단’에서 장애 어린이들과 놀아주고 빨래도 하고 그랬어요. 말은 안 통해도 참 재미있고…… 좋았어요. 물론 힘든 점도 있었지만요.


 


[공감] 지켜보시기에 자원봉사에 다녀오기 전과 후에 학생들이 달라진 점이 있나요?
[조복희 기부자(이하 ‘조’)] 봉사 다녀온 학생 가운데 2명이 휴학을 했습니다. 우리 학교에서는, 졸업반 때 휴학을 하는 것은 드문 일이지요. 국가고시에, 취업에, 현실이 쭉 연결되는 학과이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 내색은 못했지만 – 저는 휴학하겠다고 찾아온 학생들이 자랑스럽더라고요. 자신의 삶을 한 발짝 비켜서서 바라보는 자세, 그런 것들이 변화라면 변화겠지요.


 


[공감] 그 곳에서 무엇을 배웠고, 무엇을 남겨왔다고 생각하세요?
[윤] 전에는 자원봉사라면 ‘의무감’ 같은 의미가 강했어요. 그런데 인도에서 다른 사람들이 봉사하는 것을 보니까 부끄럽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자원봉사란 말을 섣불리 못하겠어요. ‘그게 과연 내 마음에 자리 잡았을까?’ 하는 의문 때문에……. 하지만 언젠가 그곳에 다시 갈 거라는 생각은 들어요. 습관처럼, 그 곳의 많은 봉사자들이 그러는 것처럼…….
[강] 외국에서 온 봉사자들과 함께 하면서 표현하는 법이 우리와 많이 다르다는 거, 혹은 내가 이런저런 점이 부족하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들에게 뭘 남겼다기보다는 그냥 그 분들의 마음을 제가 가지고 온 것 같아요.
[조] 우리 학생들이 보호적인 환경에서 지내다가 사회로 나가는 것이 너무 아쉬웠습니다. 많은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자율성과 자기결정 능력이 여전히 부족하잖아요? 젊은이들이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삶의 방향을 스스로 잡아나가기를 바랐어요. 사실 이걸 진행하면서도, 이제 다들 성인이니까 될 수 있으면 개입하지 않고, 열린 상태에서 학생들 스스로 스펀지처럼 빨아들일 수 있도록 곁에서 격려하는 입장에 서려고 노력했습니다. 낯설고 두려운 곳에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보았다는 것을 나중에 돌이켜보면 귀한 경험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쉽지 않은 일을 해냈다는 성취감이 앞으로 간호현장의 여러 어려움을 극복하는 저력으로 남으리라 믿는 것입니다.


 


[공감] 상금을 기부하기로 결정하면서는 어떤 마음이 들었나요?
[강] 솔직히 말해, 처음엔 당연히 저희 몫이라 생각했어요. 뒤풀이 말이에요. 그런데 교수님께서 “좋은 뜻으로 갔다 왔으니 끝까지 좋게 이어가는 의미에서 기부를 하면 어떻겠니?” 하시는 거예요. 생각해보니까 (기부를 하지 않는다면) 노는 데밖에는 안 쓸 것 같더라고요.
[윤] 교수님은 “이거 해! 저거 해!”가 아니라 은연중에 ‘길’을 보여주시는 분이세요. 그러면 나중에 저희도 모르게 그 길을 가게 되고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을 얻게 되죠. 잠깐 아쉬움은 있었을지 몰라도 불만은 없었어요. 오히려 당연하고 더 좋은 일이라 생각했죠.
[조] 처음 기부를 제안할 때부터 공감을 염두에 둔 건 아니었어요. 공감 자체를 잘 몰랐을 때지요. 그래서 지금 이 인터뷰까지 이어지는 과정이 기적처럼 신기하기도 합니다.


 


[공감] 그렇다면 공감을 알게 된 경로와 특별히 공감에 기부하기로 결심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조] 학생들에게 귀한 뜻에 동참하자고 말해놓고도 일에 쫓기다 보니 그것을 숙제처럼 가지고만 있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동료 교수와 식사를 하면서, 그분 따님의 안부를 묻는 과정에서 ‘공감’을 알게 된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이렇게 좋은 움직임이 있다는 것을 그때까지도 모르고 있었어요. 이미 5주년 행사도 했을 만큼 오래 되었다는데…….
법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법이 우리의 인권을 지켜주고 사람을 위해 기능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겠지요. 그런데 현실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잖아요? 그런 상식을 실현하기 위해 활동하는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의 멤버들이 자랑스러웠어요, 예, 자랑스러웠다는 것이 가장 중요했던 것 같아요. 우리 곁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 뭐 그런 뿌듯함 같은 거.
그리고 공감이라는 용어, 우리 전공에서도 커뮤니케이션 훈련 때 참 많이 사용하는데, ‘동정이나 연민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공감해야 한다.’ 등등……. 그래서인지, 솔직히 말해, ‘공감’이라는 이름의 절묘함에 끌림 측면도 있었습니다.
아참 기부를 신청하면서 저희들 신분이라든지 소속이라든지 몇 줄 적은 거, 그거 굉장히 망설이다가 적은 겁니다. 그냥 기부만 할 수도 있었지만 우리 학생들의 마음을 전하고 싶기도 했고, 여러 사람의 마음이 한데 모아진다면 어떤 영향력 같은 것도 좀 더 공고해지지 않을까 생각하다 보니,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공감] 처음에는 공감에 기부하게 될 줄 몰랐잖아요? 교수님께서 말씀을 꺼내셨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강] 제가 잘 아는 곳이 있다면 “교수님 거기 말고 여기는 어때요?” 할 수도 있었겠지만, 아는 데가 없었으니까…… 교수님을 믿었죠.
[윤] 아무래도 저희가 간호학과니까, 몸이 불편하신 분이라든가, 당연히 그 쪽으로 갈 줄 알았거든요. 그래서 교수님께서 신문기사를 보여주시며 공감을 말씀하셨을 때 좀 의아했어요. 그런데 교수님은 항상 ‘팁(tip)’을 주시는 분이고, 이번에도 ‘너희에게는 이쪽뿐 아니라 이런 쪽 길도 있다’는 말씀을 해주시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조] 전공 분야에 관심 갖는 건 기본적인 거예요. 우리 프로페션에서 주는 미션, 그건 당연한 거잖아요? 그렇지만 다른 분야도 이해는 해야 하지요. 이번 일이 우리에게 잘 모르던 세계를 알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오히려 감사합니다. 이런 것이 인연인 것이고, 앞으로 더 노력하라는 뜻이기도 하고요.


 


[공감] 간호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우리 사회 또는 사람들의 가장 아픈 부분은 어디라고 생각하나요?
[강] 예전에 교수님과 함께 다문화가정 프로젝트를 한 적이 있어요. 사실 그전까지 그분들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아, 내가 모르는 부분이 너무 많구나. 이런 데에도 관심을 가져야겠구나’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나요.
[윤] 저는 간호사가 되고 싶어서 다른 공부를 하다가 편입을 했는데 막상 실습에 들어가게 되니까 회의가 들었어요. 과연 내 직업을 가지고 사람들의 마음에까지 다가갈 수 있을까, 뭐 그런 고민…… 인도 다녀와서도 느끼는 거지만 어려운 상황에 처한 분들의 마음까지도 보듬어줄 수 있을까 하는 거지요. 정말 아픈 건 그런 거 아닐까요? 몸도 아픈데, 내 상황까지도 이해받지 못할 때… 그런 걸 공감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사실 어렵지요.
[조] 다문화가정, 이주노동자…… 우리 주변에 인권이라는 것을 주장조차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잖습니까. 그처럼 소외된 사람들에 대해 이 사회는 좀 불편해져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불편함은커녕 오히려 그들을 더 아프게 하는 모습들을 대하면 참 안타까워요. 사실 질병 자체는 의학의 발전으로 방법이 많이 보여요. 그래서 이제는 질병보다도 사회적인 부분 있잖아요? 이런 것이 꼭 누구의 몫이라기보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고 공감하였으면 좋겠어요. 예, 희망적인 메시지가 필요하지요. 감성에만 호소하지 말고 건전한 방향으로 이끄는 일종의 ‘전략’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우리의 참여로 인해 ‘정말로 달라질 수 있다!’는 믿음을 주신다면 더 많은 공감을 얻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공감] 어떤 간호사가 되고 싶은가요?
[강] 아직 명확하진 않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사람들을 봤을 때 진심으로 다가가는 간호사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윤] 우선은 실력을 갖추어야겠죠. 잘못된 케어를 하면 안 되니까요. 다음은 따뜻한 마음!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 지 잘 파악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열정이요. 열정이 없으면 무기력해지니까요. 그런데 이게, 사실 좀 힘든 건데, 시간이 지나면 금세 또 잊어버리고. 그래도 항상 그것을 깨닫게 해주시는 분이 그때그때 계시겠죠? 지금 저희한테 조복희 교수님이 계시는 것처럼요.


 




 


[공감] 기부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조] 식상할 수도 있지만, 순간적으로 떠오른 단어는 나눔입니다. 배려가 아닌 나눔. 그것을 실천하는, 실천하는 데까지 이어져야 하는.
[강] 원(circle) 같은 것 아닐까요? 제 기부가 돌고 돌아서 어떤 방향으로든 나중에 다시 돌아온다는 것.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 제가 조금이나마 보탬이 된다면 이것이 또 다른 형태로 제게 다가온다는 것.
[윤] 비우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살면서 움켜쥐고만 있으면 마음이 오히려 허전하지요. 그걸 내려놨을 때 – 내게도 그런 시기가 온다고 장담하지는 못하겠지만 – 다시 말해 누군가를 돕는 일이 자연스러울 때, 그것이 진짜 기부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조복희 기부자는 말했다. “좋은 것만 추구하면 그 만족감도 이내 사라지잖아요. 불편함도 직시할 때, 내가 갖고 누리는 것에 감사할 수 있죠. 그런데 사회적으로 열고, 다가가고, 소통하고자 하는 노력이 아직 부족한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불편한 진실’은 언제나 존재하는 것인데, 그 불편을 외면하거나 어려움을 비켜가려하는 본능을 스스로 경계해야 한다는 뜻이리라.


 


그의 말처럼 공감과 기부자들의 만남은 기적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우연이 아니라 뭔가 뜻을 가진 인연들끼리는 예기치 않은 필연으로 엮이는 것이라는 그의 말에 동의한다. ‘학생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은 축복이며 주는 것 이상으로 늘 받고 산다’는 교수와 ‘교수님 생각이라면 대략 완벽함이다’는 학생, 그들의 만남 자체가 이미 범상치 않은 ‘기적’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광주는, 그의 연구실 문은 따뜻함과 맑은 미소로 기억되는 문이었다. 필자에게, 공감에게, 그리고 세상을 향해 열려있는.


 


글_ 12기 인턴 김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