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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기부자 인터뷰] 세상을 바꾸는 아주 작은 마음의 여유 – 박세희 기부자님


 



“‘스티브 맥커리’ 사진전에 갔다가 ‘아프가니스탄의 소녀’ 사진을 보게 됐어요. 그런데 그 사진 속 소녀의 눈빛이 저에게 말을 거는 듯한 느낌을 받았죠.”
 
사진 속 한 소녀와 눈이 마주쳤던 그 날, 곧바로 공감의 가족이 되었다는 그녀의 사연을 듣고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어졌다. 그리고 그녀에게 영감을 준 소녀의 모습 또한 무척이나 궁금했다. 호기심에 먼저 찾아본 아프가니스탄의 소녀는 입을 굳게 다문 채 카메라 렌즈를 응시하고 있었을 뿐이었지만, 그녀의 깊고 푸른 눈동자에는 정말 살아 숨쉬는 무언의 에너지가 있었다. 그 눈망울을 바라보고 있으니 전쟁 속에 살아가는 작은 소녀의 두려움과 비애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사진 속 소녀를 접하고 난 며칠 후, 인터뷰를 위해 박세희 기부자를 만났다. 시종일관 유쾌하고 밝은 모습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던 그녀의 모습은 그 날 아침 내가 올려다 보았던 맑고 청량한 가을하늘과 꼭 닮아있었다.
 
 
공감과 처음 인연을 맺던 날
 
그녀의 오전 일과는 주로 한 곳에서 쉴 틈 없이 바쁘게 돌아간다고 했다. 그녀는 그런 스스로의 모습을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즈’에 나오는 공장노동자에 비유해 말하며 웃음지었다. 일터에서의 그녀는 몸이 아픈 환자들에게 처방된 약과 주사를 조제하기 위해 늘 세심하고 분주하게 움직이지만, 퇴근 후의 그녀는 예술과 문학을 사랑하며 자신의 주변을 돌아볼 줄 아는 마음의 여유를 지니고 있었다.
 
3년 전 어느 날도 그녀는 우연히 한 사진전을 보러 갔다가 새로운 세상을 마주했다..
“사진은 대부분 분쟁지역과 가난한 나라에서 찍은 것이었는데, 사람들의 눈빛이 모두 자신이 처한 상황을 말해주는 듯 했어요. 그 중에서도 가장 약자인 여자와 어린 아이들을 보니, 그들에겐 무언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란 존재하지 않는 듯 했죠. 그들도 최소한의 교육, 의료, 안전을 보장 받으며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선택하고 요구할 수 있는 삶을 누리게 되길 바랍니다.”
 
그녀는 이 사진전을 통해 ‘인권’이라는 것에 대해 한 발짝 더 다가가 생각해보게 되었다고 한다. 인권의 사전적 의미는 ‘인간으로서 당연히 가지는 기본적 권리’이다. 이것이 잠자는 생각으로만 머무르지 않고 움직이는 실천으로 한 걸음씩 나아갈 때, 그 변화는 세상을 바꾸는 희망의 씨앗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그녀 역시 무언가 바꾸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고,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한겨레 21’을 정기구독 하는데, 거기서 나와 잘 맞는 사회단체를 찾아주는 테스트가 실린 기사를 접하게 됐어요. 저도 한 번 테스트를 해보았는데 결과로 나온 단체 중에 공감이 있었죠. 그 때의 기억이 떠올라 공감을 찾게 됐어요. 어떻게 보면 돈을 기부하는 것은 가장 편하게 내 것을 나누는 방법이잖아요. 전부터 노동으로 소득이 생기면 당연히 일정 부분은 기부에 할당해야 한다고 생각해왔어요.”
그녀는 그 날 곧바로 공감의 문을 두드렸다.
 
 
사촌이 땅을 사면 축하해주는 마음의 여유
 

그녀가 바라는 세상은 어떠한 모습일까?
그것은 무언가를 선택할 때 자신의 의지대로 결정할 자유가 주어지고, 각자 노력한 만큼의 보상이 따르는 세상이다. 모두의 생각을 마음껏 표현하고 토론하며,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세상이다. 약자를 배려하고,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세상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 모든 세상이 그녀가 바라는 아름다운 세상의 모습이다. 그 중에서도 그녀가 가장 강조해 말한 것은 바로 ‘여유’다.
 
“시간적으로나 마음으로나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얼마 전 ‘한국과 프랑스의 중산층 기준’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어요.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중산층의 기준은 월 소득이 얼마 이상이어야 하고, 몇 천 CC 이상 급의 중형차를 타야하며, 몇 평 이상의 아파트에 살아야 한다는 것들이었어요. 모두 돈에 관련된 것이더라고요. 반면, 프랑스 전 대통령 퐁피두가 중산층의 기준으로 삼았던 것은 외국어 하나쯤 자유롭게 구사하며, 스포츠를 즐기거나 악기를 하나 다루고, 옆집과 다른 자신만의 요리 비법을 갖고, 사회 정의가 흔들릴 때 이를 바로 잡기 위해 나설 줄 알아야 한다는 것들이었죠. 우리나라는 어렸을 때부터 너무 경쟁만 하는 것 같아요. 저 역시도 늘 성적이 좋아야 한다는 소리만 듣고 자랐고요. 미술이든 체육이든 아이가 가진 관심사와 소질을 발견해 개발해주는 것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오색찬란한 가치들은 보지 못한 채 숫자로 드러나는 것에만 매달리고 있지는 않은가 돌아보게 된다. 모두의 내면에 잠재하고 있는 다양하고 풍부한 가능성을 자신만의 빛깔로 발현할 수 있는 세상은 더욱 아름다울 것이다.
 
 
세상 속에서 공감하기
 
공감이 하는 활동 중 그녀가 가장 관심 있는 분야는 취약계층노동 문제와 이주난민 문제이다.
 
“병원 안에도 다양한 직종이 있어요. 전문직도 많지만 비정규직 근로자들도 많아요. 하루는 청소 노동자 아주머니들이 옷에다 ‘최저임금보장’이라는 문구를 부착하고 일하시는 모습을 봤어요. 다 용역업체를 통해 고용된 분들이죠. 그분들에게 최소한의 임금은 보장해줘야 하지 않나 생각해요.”
 
우리가 학교나 회사 등지에서 늘 마주하는 청소 노동자들은 대부분 용역업체를 통해 계약직으로 일하게 된다. 그들은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거나 시간 외 근무를 강요당하는 등 여러모로 불합리한 노동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지만 제대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가 힘들다. 하루하루 자신의 고용이 불안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몇 년 전 영화 ‘방가방가’를 본 뒤 외국인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의 아픔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전에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봐도 나와는 별 상관없는 사람처럼 느껴져 그냥 지나쳤어요. 그러나 영화를 보고 그들도 나와 똑같은 사람인데 왜 그토록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돈 몇 푼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살아야 하나 생각이 들었죠. 그 동안 너무 무관심했던 것에 대해 반성도 했고요.”
 

‘함께 슬퍼하고 함께 분노하는 것이 변화의 출발점’이라고 말한 염형국 변호사의 말이 떠오른다. 그녀는 그렇게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함께 슬퍼하고 함께 분노해 ‘공감’하며 살고 있었다.
 
“사회적 약자에게 손길을 내미는 것이 세상을 바꾸는 지름길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처음부터 완벽해지려 하기보다는 천천히 조금씩이라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해나가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녀에게 나눔이란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 한다. 그녀의 말에 공감한다. 그 누구도 이 세상을 혼자서만 살아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른 이들과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기 위해, 보다 살기 좋은 세상을 꿈꾸며 나아가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나눔’이다. 아름다운 세상은 뛰어난 누군가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우리 한 명 한 명이 마음을 나누며 공감할 때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글_배현아(16기 자원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