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공감

[기부회원 이야기] 부족함 속에서 천천히 희망을 만들어 갑니다 – 서선영 기부회원님



 




 


5월의 기부회원 인터뷰를 위해 명단을 보던 중 ‘서선영’이라는 낯설지 않은 이름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2008년의 촛불집회에 관심을 가졌던 분이라면, 한번쯤은 신문 사회면에서 그 이름을 보실 수 있었을 겁니다. 서선영 기부회원님은 2012년 3월에 만들어진 공익변호사 단체 <희망을 만드는 법>의 구성원이자, 한때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공채 상근 변호사이기도 했습니다. 문득, 공감과 같은 공익 변호사 단체에서 일하시는 분이 꾸준히 공감에 기부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졌습니다. 이런 단순한 궁금증은 곧바로 인터뷰로 이어졌습니다.


 


인터뷰는 5월을 시샘하는 바람이 거세게 불던 4월의 마지막 날, <희망을 만드는 법>이 위치한 오피스텔의 옥상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가장 먼저, 서선영 기부회원님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알기 위해 <희망을 만드는 법>에 대해서 질문을 했습니다.


 


[서선영(이하 서)<희망법>은 공감과 비슷하게 공익 전담 변호사 단체이고, 작년 3월 달에 만들어졌어요. 올해로 2년차가 됐고요. 사실 처음에 시작할 때는 하고 싶은 일들이 되게 많았어요. 그래서 기대도 엄청 많았는데, 막상 일을 하다보니까 많은 주제에 도저히 다 집중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올해는 세 가지 분야로 주제를 한정했어요. ‘SOGI(Sexual Orientation and Gender Identity)팀’이라고 해서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성소수자 관련해서 활동하는 팀이 하나 있고, 그 다음에 ‘장애 팀’이 있어요. 그리고 저는 ‘기업과 인권 팀’에 있어요. ‘기업과 인권 팀’이라 하면 다들 생소하실 듯해요. 왜냐하면 대부분 인권을 이야기할 때 인권의 의무자를 국가로 구상하고 있잖아요. 저는 기업도 국가만큼이나 강한 권력집단이 되었기 때문에, 기업도 인권 침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대응을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공감] <민주사회를 위하 변호사 모임>(이하 민변)에 계시다가, 잠깐 쉬시고 그 다음에 <희망법>으로 오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서] 너무 잠깐 쉬었어요(웃음).


 


 


[공감] 쉬지 않고 바로 일을 하시게 된 계기 같은 게 있었나요?


 


[서] 제가 <민변>을 3년 정도하고 1년 정도 쉬고 싶었어요. 저는 사람이 3년 정도 일을 하면 조금 쉬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어서요. 그때 <민변> 소수자인권위원회에서 조혜인 변호사랑 한가람 변호사를 만났는데, 마침 제가 <민변> 3년이 다 끝나가서 앞으로 무엇을 할까 고민하고 있을 때였죠. 세 명이서 이야기를 하다가 공감과 같은 모델을 참고해서 ‘우리가 한 번 단체 같은 걸 만들어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원래 셋 다 공익 전담을 좀 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거든요. 그렇게 해서 <희망법>을 생각하게 된 거죠.



그리고 류민희 변호사하고 김동현 변호사는 연수원에서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 사람들이 어찌어찌해서 다함께 모였고, 같이 하자고 결정을 하게 됐어요. 운이 좋아서 좋은 사람들 만나고 여기까지 오게 된 거죠. 저는 정말 1년 쉬고 싶었는데, 다른 사람들이 빨리 만들자고 했어요(웃음).


 


 


[공감] <희망법>을 모르시던 분들은 대부분 김재왕 변호사님이나 한가람 변호사님을 통해 처음 알게 되는 것 같아요. 두 분 다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계신 유명한 분들이잖아요. <민변>에서 ‘최초’의 공채 상근 변호사라는 수식어를 가지고 계셨는데, 혹시 지금은 그런 수식어가 없어 섭섭하지는 않으세요?


 


[서] 아니요, 너무 좋아요. 스포트라이트를 안 받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요. 최초라는 말이 산뜻한 말이기도 하지만 조금 무게감 있는 말이기도 하잖아요. 어떤 일의 ‘최초’다보면 너무 많은 것들에 대해서 질문이 쏟아지는 것 같아요. 또 굉장히 책임감도 무겁고. 저는 김재왕 변호사나 한가람 변호사한테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있어요. 섭섭한 건 전혀 없고요.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그 무게감을 느끼고 있는 김재왕 그리고 한가람 변호사님한테 감사할 따름입니다.


 


 


짓궂은 질문에도 전혀 당황한 기색이 없는 기부회원님을 보며, 기부자 명단에서 ‘서선영’이라는 이름을 보고 들었던 의문을 바로 얘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역시나 답변은 간단하고 솔직했습니다.


 


[서] 공감변호사님도 저희를 후원하는 거는 마찬가지에요. 공감 변호사님들도 다 우리 후원해주고 계시거든요. 서로서로(웃음). 사실 처음 후원한 곳이 공감인데, 후원을 처음 시작하기가 어색해서 그렇지 후원을 하게 되면 점점 후원할 곳이 보이는 것 같아요. 공감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단체지만 서로서로 후원이 있어야 운영이 되는 곳이기 때문이죠.  물론 공감과 <희망법>의 역할이 비슷하다고 해도 공감과 <희망법>이 다루는 주제가 서로 다르기도 하고요. 이런 단체가 많이 생기는 게 좋은 거죠. 


 


 


서선영 기부회원은 <민변>에서 처음 인턴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인턴 혹은 자원 활동가들과 함께 공부도 하고 활동도 하면 서로서로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인턴 제도를 도입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청소년 기부자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해보았습니다.


 



[서] 이런 거 너무 어려워요(웃음). “꿈을 가져라.” 이런 건 제가 싫어하거든요. 꿈을 가질 조건이 안 되는 사람들도 너무 많기 때문에요. 사실 저는 공익 전담으로 하는 것도 굉장히 운이 좋았다고 생각을 하고, 공익 전담이 하고 싶어서 되는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사실 급여도 그렇게 많지 않고, 들어가고 싶어도 뽑는 경우도 잘 없고요.



맞는 답인지는 모르겠지만, 특정 분야에 대한 생각을 좀 막연하게 하다가 어느 순간 벽에 부딪쳐서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 대처를 잘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이 부분이 안 되면 다른 식으로도 활동을 할 수 있고, 하면서도 다른 방식을 찾을 수가 있고요. 공익 전담으로 변호사를 할 수도 있고 아니면 자신의 일을 하면서 공익활동을 할 수도 있고. 항상 자신이 생각했던 것을 끝까지 밀고나가는 힘이 중요한 것 같아요. 평생 동안 갖고 가는 내부 생각, 가치, 이런 것들을 끝까지 견지하는 거죠.


 


 


[공감] 희망법이 만들어진 지 이제 1년이 조금 넘었잖아요. 1년 동안 활동하시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이 무엇이었나요. 얘기를 듣기로는 풀뿌리 후원으로 운영이 되기 때문에 재정상의 어려움이 큰 것으로 알고 있거든요. 실제로는 어떤가요?


 


[서] 사실 재정상황은 항상 안정 돼있지 못해요. 그래도 일단은 그런 상태로 계속 살아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또 반대로 재정이 안정이 안 되기 때문에 더욱더 열심히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도 있어요. 사실 저를 포함한 우리 <희망법> 구성원들 성격이 쭈뼛쭈뼛해서 후원 요청 같은 거 잘 못했는데, 어느 순간 보니까 제가 후원 신청서를 돌리고 있더라고요. 아, 상도의에 어긋나기는 하지만 <희망법> 많이 관심 좀 가져주세요(웃음).


 


 


[공감] 일의 성과가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다는 점도 어려운 부분일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제주 강정 마을에 상근 변호사로 일을 하셨잖아요. 그런데 강정 마을 문제가 어느 시점에 완벽히 해결이 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단순히 소모된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 것들 때문에 힘들지는 않으신가요?


 


[서] 여기서 그렇게 힘들다고 생각해 본 적은 사실 별로 없어요. <민변>에 있을 때는 세상의 모든 이슈들이 다 오는 곳이기 때문에 정신이 없기는 했어요. 그런데 여기서는 오히려 미안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죠. 강정 같은 경우에도 제가 한 달 있다가 왔거든요. 저는 현장을 떠났지만 누군가는 현장을 지키고 계시잖아요. 해결이 안 되면 결국에는 현장에 남아 있는 분들이 제일 힘드신 거고요. 사실 변호사는 직접적으로 바로 현장에 부딪혀서 뭔가를 하지는 않기 때문에 현장에 계신 분들만큼 마음이 힘들지는 않겠죠. 그래서 제가 힘들어 해야 되나요? 힘들면 더 열심히 해야죠. 또 실제적으로 지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그 안에서 어떤 의미를 발견하고 어떤 의미를 만들어 나가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어떤 공익 소송을 할 때에도 질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는 소송들이 있어요. 그럴 때는 졌다고 하더라도 거기에서 교훈으로 남겨 놓을 것들은 반드시 찾아야 되는 거고요.


 


 


[공감] 마지막으로, 본인이 생각하시는 ‘희망을 만드는 법’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서] 저는 항상 어딘가 비어있는 게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또 부족하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하고. 어떤 풍성한 느낌이 없는 것이 대부분의 삶인 것 같아요. 옛날에는 그런 것들이 가끔씩 힘들었어요. ‘왜 내 인생이 이렇게 공허해보일까’, 아니면 ‘왜 이렇게 에너지가 없을까’ 이런 것들이요. 희망을 만드는 법이란 답에는 정확하지 않은 것 같은데, 항상 비어있고 부족하고 쓸쓸하고 그런 것들을 인정하면서도 내가 하고 싶은 걸 찾아가고 천천히 기억하고 이런 것들이 저의 희망을 만드는 법이 아닐까 싶어요. 모범답안이 아니라 죄송해요. 거짓말을 할 수는 없잖아요(웃음).


 




 


비어있고 부족할 수밖에 없는 게 인간이라는 서선영 기부회원의 마지막 대답. 그 대답은 인터뷰에 끝까지 진지하고 솔직하게 답변하는 기부회원 자신의 모습과 닮은 듯 했습니다. 꾸밈없이 자신의 부족함을 내비치는 서선영 기부회원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다른 유려하고 거창한 말들보다 진심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공감은 아직 부족하다고 이야기하는 서선영 기부회원님을, 그리고 <희망법>을 응원하고 싶습니다.


 


 


글_임상옥 (17기 자원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