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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기부회원 이야기] 상식이 통하는 법 이야기 – 이종수 기부회원



 


1776년 토머스 페인이 쓴 『상식(Common Sense)』은 46쪽에 불과했지만, 이 조그마한 책 한 권이 미국 독립운동에 불을 질렀습니다. “이제부터 나는 오로지 단순한 사실, 명백한 논거, 평범한 상식만을 제시할 것이다.”라고 말한 페인은 결국 미국을 변화시키는 씨앗을 마련했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상식’은 무엇일까요. 이번 인터뷰에서는 이종수 기부회원님을 만나 특별히 ‘상식’과 ‘법’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상식이 통하는 법





“저는 법을 업(業)으로 삼고 있지만, 법은 상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반인의 상식에 비추어서 이해가 되지 않으면, 그 법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동안 법이라고 하는 것이 특정 해당 전문가, 직업군 내의 전유물처럼 통용되어 온 것은 우리나라 사법 시스템의 문제점에서 연유한다고 봅니다. 소위 법률적 분쟁을 전제로 판사, 변호사 등이 자기들만 익히 연마했던 어려운 법률 용어들을 사용해서 법률시스템이 돌아가게끔 하는 것이지요.”



 


 


예전에는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가서 “예, 제가 서면을 잘 제출했습니다.” 말만 듣고 왔어야 할 때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법원 판결이 나더라도 왜 승소했고, 왜 패소했는지 자세히 알 수 없으니까 사건 당사자가 판결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경우도 많았고요. 그것을 극복하고자 나온 것이 공판 중심주의인데, 그는 이것이 혁명적인 변화라고 말합니다. 국민이 실제 재판에서 공정한 재판이 이루어지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공판중심주의와 마찬가지로, 국민참여재판도 사회적 수락 가능성을 높이는 제도입니다. 국민이 직접 재판의 평결에 참여하기 때문이죠. 더 의미 있는 것은 배심원단들이 보편적 상식을 말할 수 있는 국민의 대표라는 점입니다. 주권자인 국민이 입법부의 구성원을 선거로 뽑고, 행정부의 수장을 선거로 뽑잖아요. 그렇다면 국민참여재판은 주권자인 국민이 사법부의 권력 행사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인 것이지요.”


 


미국의 경우 배심원의 평결에 기속력이 있지만, 우리나라는 권고적 효력만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 어느 법원의 재판부가 안도현 시인에 대한 배심원의 무죄 평결에 따르지 않았던 것도 그 이유에서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배심원에게 미국처럼 기속력을 주면 어떨까요. 짧은 생각으로는 국민들이 법적으로 기속력 있는 평결을 내릴 수 있을지에 대해 우려부터 되는데요. 전문적인 판사의 판단을 그대로 따라야 하는 것이 옳다고도 생각되고요.



 


“우리 사회가 법관직의 전문성에 대해서는 마치 신화와도 같은 뿌리 깊은 오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판사가 법전문가이기는 하지만 다루어지는 개별 사건들이 갖는 문제들에 있어서는 일반시민들과 마찬가지로 비전문가이지 않습니까? 또 보편적인 법의식이 문제가 되었을 때 판사가 혼자서 예단하는 것이 한편 대단히 위험하지요. 그래서 참심제와 배심제는 법관이 전지전능한 사람이 아니라는 인식에서부터 출발을 합니다. 참심제는 개별 전문가를 명예직 법관으로 그리고 배심제는 일반시민의 보편적인 법의식을 대표하는 배심원을 내세워서 직업법관인 판사와 함께 재판을 진행하는 것이지요.”


 


 


 


청년들에게 요청되는 것


 


그런데 사실 국민참여재판은 우리나라의 현대사에서 2000년대 이전까지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었습니다. 기본권도 보장되지 않았던 시대의 흐름 속에서, 우선 급한 것은 민주화였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곁에 가까이 놓여있는 기본권이라는 것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희생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기억합니다. 특히나 82년부터 88년까지 대학교에서 학부와 대학원 과정을 보낸 그에게, 민주화 운동은 ‘대학 시절’하면 생각날 생생한 기억이었습니다.




 


“그 시절, 짐작하시겠지만 암울했었던 5공화국체제에 저항했던 민주화 운동 시절이었죠. 교내에서는 학내 시위를 원천봉쇄하기 위해 사복경찰들이 매일 수백 명씩 상주하고 있었지요. 항상 금요일 점심 무렵이면 여기 중앙 도서관 5층에서 유리창이 깨지든지 아니면 대강당 위에서 깃발을 들고 나오든지, 어딘가에서 데모를 주동하는 친구가 나와요. 그러다가 시위 중에 건물에서 떨어지고서 평생 불구가 된 안타까운 분들도 있었습니다. 우리 대학시절은 그저 암울했었지요.”


 







지금의 20대와 그 때의 20대는 다소 다르다는 생각입니다. 90년대에 태어난 이들은 태어나자마자 민주주의를 맛볼 수 있었습니다. 이들 젊은이들이 과거와 같이 민주화나 독재타도, 이런 큰 주제에 직면해서 개인적인 희생 여부를 더 이상 고민하지 않은 채, 나름대로 정상적인 대학생활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큰 다행입니다. 그리고 과거와 다른 지금의 청년들에게 요청되는 것은 무엇일지 물었는데요, 그는 사회의 현안 쟁점을 포착할 수 있는 문제의식, 그리고 이 문제점을 실천적으로 해결해가는 지식인으로서의 책무감이라고 말합니다.


 





“젊은 대학생들이 사회의 문제를 앞두고서 과거와 같이 민주화 등 큰 담론을 상대로 개인적인 희생을 무릅쓰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나름대로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현재의 사회를 보다 낫게 개선하려고 노력해야 하는데, 요즘은 이런 비판의식이 다소 결여되어있지 않나 생각해요. 그리고 자신의 정당한 노력의 결과에 대한 자부심이 당연한 기득권 내지 특권의식으로 연결되고 있지 않은가 싶어서 한편 걱정스러운 면도 있습니다. 이보다는 지식인으로서의 의무감, 책임감이 강조되어야겠지요.”


 


 


 



헌법의 정신이 실현되기를


 


“헌법적인 현안 쟁점에 있어서 누구보다 빨리 문제의식이 담긴 논문을 써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지고 있다”는 그는 오늘도 사회적 이슈에 대해 헌법적 물음을 던집니다. 비단 논문에서뿐만 아니라 언론에 칼럼, 사설, 기고문을 내며 지성인으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데요. 그가 어린 시절에 꾸었던 신문기자의 꿈을 절반은 이룬 셈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앞으로의 삶에서 가지는 목표나 꿈이 무엇일지 물었습니다.


 


“어려운 질문이네요. 큰 꿈은 아닙니다. 우선 학생들로부터는 강의에 있어서 유감이 없는 교수가 되길 바라고 그리고 동료교수들한테서는 적어도 ‘공부 안하는 교수’로 인식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기본권 보장 및 소수자 보호 등 우리 사회에서 헌법의 정신과 가치가 제대로 구현되고 실현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는 데에 헌법학자인 저 역시 일조를 했다고 평가될 수 있으면 더욱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유학시절, 독일의 지식인들이 일상생활에서 인격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에서 감동을 느꼈다는 그는 자신의 연구실에서도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연구실에 들어섰을 때, 눈에 띄었던 것이 학생들에 대한 배려였습니다. 채점을 통해 학생들을 평가하는 일이 언제나 어렵기만 하다는 그는 일방적인 평가가 아닌 이해 가능한 평가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가 학생을 인격적으로 대우하는 일이 헌법이 말하는 ‘사람’에 대한 존중의 일상적 실천인 것 같았습니다.


 



공감에 기부하는 이유도 그 마음에서부터 출발합니다. “공감의 취지에 공감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그는, “공감이라는 곳은 우리 기부회원들 각자가 쉽사리 못하는 일을 기꺼이 해내시는 분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작은 기부들이 모여서 이 같은 활동이 지속될 수 있다면, 큰 보람인 셈이지요.”라고 덧붙였습니다. ‘공감’한다는 짧은 한마디였지만, 그 안에 학문적으로도, 경험적으로도 깊은 의미가 담겨져 있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헌법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헌법에는 불가침의 ‘기본권’이 명시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헌법의 정신과 가치가 실현되기를 바라는 것은 곧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삶의 권리가 지켜지기를 바라는 일일 것입니다. 공감이 하고자 하는 일을 ‘공감’하는 기부회원이 있기에 공감이 더욱 이 일에 앞설 수 있었습니다. 바쁜 시간을 쪼개 인터뷰에 응해주신 이종수 기부회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글 _  정소망 (18기 자원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