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회원 이야기] 오늘 하루도 고맙습니다 _ 강지용 기부회원
어제는 지나버렸고 내일은 알 수 없지만
오늘은 선물이다.
그래서 현재(present)라고 한단다.
– 영화 『쿵푸펜더』 중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
한 마디로 자신을 표현하자면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지 묻는 말에 강지용 기부회원은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어제도, 내일도 아닌 바로 오늘을 마지막 하루처럼 사는 것이 삶에 대한 자세이자 태도라고 말이다. 그녀의 손을 잡고 씩씩하게 걸어온 아들 시우도 그런 엄마의 뜻을 아는지, 그 날 하루도 행복한 미소를 띠며 연신 생기 있게 움직였다. 그런데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하고 할 일을 미루지 않아야겠다는 그녀의 다짐에는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
“시어머니께서 4년 전에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지셨어요. 3년 6개월 정도를 투병생활을 하시고, 지난 달 돌아가셨고요. 그 당시 바로 어제만 해도 아이를 보시던 시어머니가 갑자기 쓰러지신 거여서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었어요. 수술을 해도 생명을 건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상황이었죠.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 내게 닥쳤더라고요.”
그녀에게 죽음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라 언제든 ‘내게도 닥칠 수 있는 일’ 되었다. 그리고 이는 오늘 하루에 대한 소중함과 오늘 하루에 최선을 다해야함을 일깨웠다. 이는 그녀의 하루를 더욱 의미 있게 만들었다. 당장 지금이라도 생각나면 아이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부모님께도 미루지 말고 안부를 전하고, 어제 품었던 원망, 미움이라도 오늘밖에 못 산다는 마음으로 용서하면서 말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끈
그리고 또 하나의 변화가 있었다. 어려움은 나누면 줄어든다는 생각이었다. 시어머니가 중환자실에 있으실 때, 생각보다 많은 병원비가 나왔다. 그런데 어머니와 친분이 있으신 분들이 찾아와 그녀의 손에 흰 봉투를 하나씩 쥐어주고 갔다. “애써라”, “고생해라”, “얼마 안 되지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의 따뜻한 격려와 전해지는 마음은 차곡차곡 모여서 결국 큰 도움이 되었다. 생색을 내려는 분 없이, 넉넉한 형편이 아님에도 도와주시는 모습은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그녀의 어려움을 덜어주었다.
그러면서 타인의 어려움을 덜어줄 수 있는 일, ‘기부’를 결심하게 되었다. 전부터 기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지만, 막연함에 어디에, 어떻게, 어느 정도를 해야 할 지 선뜻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터였다. 그녀에게 기부에 대한 생각을 묻자, 기부란 곧 ‘공감’이라고 답했다. 워킹맘으로 일하면서 직장과 육아를 동시에 감당해내는 일이 너무 힘들었을 때, 문득 싱글맘들은 얼마나 힘들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아직 사회적 약자에 여성들이 있잖아요. 워킹맘이다 보니까, 싱글맘들은 어떻게 생활을 할지 너무 많은 생각이 들어요. 저는 친정 엄마, 시어머니, 친정 언니, 도움을 많이 받으면서 한 아이를 키우면서도 힘들어서 헉헉 거리고 혼자 모든 짐을 짊어진다고 생각했는데, 싱글맘들은 경제적인 것, 그리고 육아를 모두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잖아요. 얼마나 어려울 지 생각해요. 그리고 그 분들에게 말 그대로 공감이 되는 거예요. 이런 공감이 기부로 이어진 거고요.”
이 ‘공감’은 그녀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들 시우의 교육에서도 ‘공감’을 빠뜨리지 않는다. ‘역지사지’는 아직 시우에게는 어려운 말이기에, 그녀는 시우에게 남에게 듣고 싶은 말을 하고, 듣기 싫은 말은 하지 말라고 전한다. 時佑(때 시, 도울 우)라는 이름도, 시우가 남을 돕는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지었다. 그래서인지 시우도 어려운 이를 보면 외면하는 일 없이 자신이 도울 수 있을 만큼 돕는다.
하지만 사회는 ‘공감’을 가르치기 어려운 환경이다. 양보가 미덕인 사회는 구시대적인 것이 되어버렸고, 실상 학교에서도 양보보다 자신의 것을 소유하는 것을 더 많이 가르친다. 공부가 최우선인 학교에서 인성에 대한 교육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기 일쑤고, 아이들은 점차 공감능력을 잃어간다. 그녀는 어느 것이 목적인지도 모른 채 그저 ‘공부’만 우선인 분위기가 우려된다고 말한다. 아이들에게 마음껏 꿈꾸라고 말하고 싶어도, 요즘 아이들은 바빠서 꿈 꿀 시간도 부족하다고 말이다.
“표정을 보여주고 이 사람의 감정을 읽어보라고 하면,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이 감정을 못 읽어요. 관심이 없는 것이죠. 아이들의 문제라기보다 아이를 둘러싼 여건이 타인의 감정에 관심이 없도록 만드는 것 같아요. 지식 교육밖에 안 되니까요. 아이의 입장에서, 공감은 소용이 없는 거예요. 친구하고 트러블이 있어서 싸웠다고 하면, ‘네가 그 친구라면’은 아이들에게 통하지 않아요. 세상은 정말 홀로 사는 것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홀로 잘하는 것만을 강조하는 것 같아서 안타까울 때가 많아요.”
세상을 바라보는 유(柔)한 시선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자주 하던 그녀는 기부, 나눔, 도움과 같은 중요한 것들 또한 아는 만큼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를 다른 말로 바꾸면 ‘공감할 수 있을 만큼 함께 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녀는 이주 노동자의 삶에도, ‘나도 언제든 외국에 나가서 돈을 벌러 나갈 수 있는 것’이며, 대한문 앞 쌍용차 사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삶에도, ‘저 자리가 내 자리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시우가 시우의 이름처럼 살기 위해 ‘공감’을 가르친다. 그녀에게 앞으로 시우가 살아갈 사회는 어떤 사회이기를 바라는지 물었다.
“아이들의 폭력, 그리고 왕따라는 것이 사실은 아이들의 잘못이 아니거든요. 그건 어른들의 잘못이에요. 사회적 폭력이 만연하는 데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서 아이들의 폭력을 뭐라고 하면 안 되잖아요. 아이들은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가랑비에 옷 젖듯 어른들에게 배우고 되풀이한 것뿐이에요. 세상은 이런데, ‘너만은 해맑게 살라’고 얘기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시우가 살게 될 수 있는 세상은 좀 바뀌었으면 좋겠죠. 다양성을 요구하면서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가 아니라 아이가 서로 달라도 괜찮다는 걸 받아들이고 인정할 수 있는 사회의 모습으로요.”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그녀는 “나부터 변화 해야죠”라고 말한다. 직장 내에서 워킹맘이 주눅들지 않고 자유롭게 일할 수 있도록 워킹맘을 바라보는 시선과 인식을 유(柔)하게, 가정 내에서 시우에게 인권에 대해 교육할 때도 시우가 자유롭게 꿈꾸고 많은 것을 편견 없이 볼 수 있도록 다양한 경험과 함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한다는 것이었다.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하고, 할 일을 미루지 않는다는 그녀의 삶의 모토와 함께 마음과 실천 사이의 거리는 그만큼 짧아지는 것 같았다.
인터뷰 내내 호기심 가득했던 시우의 눈망울이 앞으로 더 따뜻해질 것을 생각하니 기대가 된다. 또 아이들이 그런 시선을 자연스럽게 가지게 될 날을 희망하며 공감 또한 더욱 노력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다. 두 시간이 한 시간으로 느껴질 만큼 유쾌하고 즐거웠던 인터뷰,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주시고, 또 따뜻한 마음으로 간식까지 준비해주신 기부회원님께 감사드린다. 엄마에게 인터뷰 할 용기를 불어넣어준 시우에게도.
글_정소망 (18기 자원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