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회원 인터뷰]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지닐 수 있는 사회를 위하여 – 이호중 기부회원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 헌법 제 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명시한 헌법 제10조. 하지만 묻는다. 우리는 진정으로 인간으로서 존엄 할 수 있는 사회에 살고 있는가? 비용절감을 위해 쌓아 올린 선적과 함께 진도 앞 바다의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잠겨간 아이들. 전 재산 70만원을 두고 “죄송합니다.”라는 메모와 함께 생활고로 쓸쓸이 생을 마감한 세 모녀. ‘땅콩 회항’, 각종 ‘묻지마 범죄’. 이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분노와 절망에 지쳐, 무력감만을 학습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을 번뜩이며 희망을 말하는 이가 있다. 매서운 눈매와 형법 교수라는 차가운 이미지와는 달리 우리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뜨거운 열정을 내뿜는 이. 공감의 기부회원이자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에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이호중 님을 만나보자.
“제 딸이 공감에서 주최한 청소년 인권 강좌를 다녀와서는 염형국 변호사 팬이 돼서 돌아왔지 뭐예요. 현장에서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치열하게 참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 우리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하고 발전하기 위해 청소년의 인권 교육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공감이 그런 일을 해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공감에 각별한 애정을 보이는 그는 2004년도 당시 사회보호법 폐지 운동하면서 염형국 변호사를, 천주교 인권 위원회에서 성폭력 법제도 개선 운동을 하면서 김영수 변호사를 알게 되었다. 공감이라는 단체보다 먼저 구성원들을 알게 된 셈이다. 공감의 자문위원까지 맡았던 그는 현재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천주교 인권위원회와 공권력 감시 대응팀, 그리고 세월호 조사 비상임위원회에서 활동 중이다. 안식년이었던 작년에도 쉴 새 없이 세월호 문제 해결을 위해 앞장섰다. 활동 경력만을 보면 인권 변호사나 인권운동 활동가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우리 사회의 인권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온 그. 학자인 그가 이토록 사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 계기라도 있는 것일까?
법리를 넘어 사회 변화를 위해 소통하는 법률가
빈 건물 옥상에서 망루를 설치하고 자신의 권리를 외치는 철거민들과 몽둥이와 방패를 휘두르는 전투 경찰관들. 그리고 소중한 생명들이 희생되었던 용산참사를 기억한다. 그 때를 기억하며 이야기를 시작하는 그의 목소리도 무겁게 들려왔다.
“그 때의 충격을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과연 이게 사람이 사는 세상이란 말인가?’ 한참 충격에 빠져있었습니다. 물론 교수라는 직업으로서 주된 일이라면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를 통하는 것이지만 학술적 모든 이론의 핵심은 결국 인권, 민주주의의 문제라는 결론을 짓게 되었고 ‘우리 사회가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더 적극적으로 인권과 민주주의 관련 문제에 목소리를 내고 활동하게 되었지요.”
그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법률가들이 현장과 ‘소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법은 사회의 모든 현상에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법 논리로만 접근하기보다 사회 문제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사람들과 보다 더 소통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사태를 법적으로 인식하는 데에서도 현실 참여가 분명 중요한 밑바탕이 될 거라고 말한다.
“현장에서 직접적으로 몸으로 느끼고 체험하는 이야기 하나하나가 훌륭한 법률가로 성장하기 위한 소중한 자양분이지요. 저는 법률가들이 너무 사법적인 판단에만 종속되어 버리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적 이슈에 대해 법적인 문제에 관여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사람들을 만나 소통을 하고 그를 통해 더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고 법리적으로 녹여내는 작업이 법률가들이 해야 할 일이지요.”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도 그의 소통과 참여에 대한 고민이 여실히 드러났다.
“글쎄요. 제가 무엇을 더 해야 하고 더 할 수 있을지 고민입니다. 저뿐만 아니라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식인 사회가 적극적으로 사회 문제에 고민하고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괴물을 만드는 사회를 극복하기 위해
그는 우리 사회의 각종 흉악 범죄의 근본적 원인은 소외에 있다고 말한다. 범죄 자체 현상만을 볼 것이 아니라, 범죄자가 양산되는 사회를 돌아보자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우리 사회는 범죄자를 인간이 아닌 괴물, 악마로 치부해버리고 그 사람 한 명을 없애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 범죄는 모두 개인이 스스로에게 책임을 돌리는 겁니다. 즉 범죄자는 자기 경영에 실패한 사람으로, ‘우리’가 아닌 배제되어야 할 사람이 되는 거지요. 근원적으로 그 ‘악마’는 어디서 나왔냐는 겁니다. 서민층을 위한 아파트를 만들지만 고립화 되면 소외 현상이 발생하게 되죠. 근원적으로 범죄는 소외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그 사람을 보듬어주려고 했다면, 과연 그런 범죄를 저지를 수 있었을까요? 살아 보려는 희망이 사라져 버린 상태에서 사회에 대한 분노와 절망 속에서 극단적인 범죄에 이를 수 있는 거지요.”
그는 사회의 한 부분만을 바꾼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그가 바라보는 그 곳에는 ‘복지’라는 개념이 놓여있었다.
“우리는 범죄피해자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도움을 주는 것이 무조건적으로 필요해요. 하지만 지금처럼 단순히 범죄자를 벌주고 처단하는 것으로는 절대 해결될 수 없습니다. 미국은 형량이 세계적으로도 가장 강한 나라임에도 범죄율이 가장 높은 나라잖아요? 범죄자를 강하게 처벌하는 것으로는 결코 사회 범죄를 해결할 수 없어요. 범죄는 단순한 개인의 잘못으로 치부해버려서는 안 됩니다. 궁극적으로는 우리 사회에 소외된 약자를 만들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해요. 그들이 ‘왜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가’를 이해하고 극단적인 범죄로 나아가지 않도록 이끌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합니다. 범죄 문제에 대한 대책으로 복지 국가에 나온 정책을 보면 많은 보고서들은 범죄를 빈곤의 문제, 주거 환경의 문제에 있다고 지적하지요.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방향이 범죄자가 얼마나 잔인하게 범행을 저질렀고, 어떻게 강하게 저놈을 처벌해야 하는 지가 아니라 범죄자가 등장하지 않는 사회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겁니다.”
그와의 대화를 통해, 근본적 해결책은 ‘처벌’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그의 강한 신념을 느낄 수 있었다. 그와 대화를 나누며 문득 얼마 전 읽은 책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우리 아이들이 물려받을까 두려운 세계가 아니라,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주고픈 세계를 만드는 데 평생을 바친다는 것. 이야 말로 살아볼 만한 가치 있는 삶이 아닌가?
“자네는 순진하게도 꿈을 꾸고 있어! 수많은 머리가 달린 히드라와 같은 인간 본성과 싸우려는 자는 말 못할 고통을 대가로 치러야 하네! 죽음을 눈앞에 두고 마지막 숨을 몰아쉴 때에야 비로소 자신의 삶이 끝없는 바다에서 한 방울의 물방울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될 걸세!”
하지만, 바다 또한 무수히 많은 물방울이 모인 것이 아닌가?
『클라우드 아틀라스』, David Mitchell 中
인간으로서 존엄할 수 있는 사회, 소외 받는 이가 없는 사회를 꿈꾸며 끊임없이 사회 참여를 통해 소통하는 이호중 님. 물방울 한 방울 한 방울이 모여 아름다운 호수를, 또 바다를 이루듯 그가 고뇌하며 걸어가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진정 인간으로서 존엄할 수 있는 세상을 이루기를 희망한다. 우리도 더 아름다운 바다를 이루기 위해 함께 한 방울의 물방울을 보태어 보는 건 어떨까?
글_박효민 (공감 20기 자원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