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회원 인터뷰] ‘코드’가 통하는 친구를 만나다 – 정세진 기부회원님
혹시, 2010년에 방영된
“9시 뉴스 정세진입니다.”
매일 똑같은 시간, 똑같은 자리, 똑같은 멘트로 뉴스를 시작하는 앵커의 모습에는 빈틈이 없어 보입니다. 실제 당시 9시 뉴스를 진행하던 정세진 아나운서의 가장 큰 고민거리이자 목표는 객관적인 사실 전달이었습니다.
“저는 9시 뉴스를 진행할 때, 일단 다양한 보도를 수집해서 보고 어느 쪽이 정말 객관적인 사실(Fact)의 모습일까를 고민했던 거 같아요. 사실 객관적인 문장 하나 만드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잖아요. 편견이 없으면서 임팩트는 줄 수 있는 한 문장. 생각할 거리도 던져주고. 뉴스 할 때는 항상 그런 것들을 생각했어요. 지금은 앵커가 아니지만, 대신 라디오 뉴스를 전할 때도 3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핵심적인 내용을 어떻게 잘 전달할지 고민을 하죠.”
<열려라 꿈동산>, 의외의 방송 선생님
유명인의 자서전이 인기 있는 이유는 그 속에 남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고민과 눈물이 오롯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공감은 아나운서 정세진이 뉴스 앵커가 되기까지의 삶을 살펴보고 싶은 마음에 그녀의 자서전을 펼쳐보았습니다.
“앵커가 되고 싶어서 대학교 때 아나운서 시험을 준비하게 됐어요. 그때까지는 제가 잘난 줄 알고 시험장에 갔는데, 정말 열심히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은 거 에요. 저는 바로 1차 시험에서 떨어졌어요. 떨어지고 엉엉 울었는데, 어떻게 보면 그게 생애 첫 고배 같은 거였어요. 1차 시험 볼 때 천오백에서 이천 명이 오거든요. 다 열심히 이렇게 읽으면서 연습하는데, 저는 저런 마음가짐으로 오지는 않았던 거 같은 거 에요. 그래서 떨어지고 나서 많이 반성했고, 1년 동안 떨어져도 후회가 없을 만큼 생활했어요. 그때 안 떨어졌으면 굉장히 좀 기고만장하지 않았을까요. 잘 떨어진 것 같아요(웃음).”
재수 끝에 들어간 KBS. 그곳에는 또 다른 어려움이 새내기 아나운서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열려라 꿈동산>이라는 어린이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열려라 꿈동산> 진행할 때 제일 고생을 많이 했어요. 입사해서 1년 차 될 때 1년 반 진행했는데, 하루에 9개씩 녹화를 떠요. 대본도 다 외워야 하고. 그리고 저는 뉴스앵커하려고 방송국 들어왔는데 어린이 프로 시켜서 이불 속에서 울었어요. 그때만 해도 자기 프라이드가 강해서 ‘어, 나는 뉴스 해야 하는데’ 이런 게 있었던 거 에요. 그때 이금희 선배님이 어린이 프로그램을 많이 해야지 어른들이 기억을 많이 해준다고 말씀해 주셔서 힘을 내서 했어요. 그래도 매일 대본을 잘 못 외우는데다가 표정도 밝지 않으니까 진행하는 게 만만치 않았죠.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방송에 필요한 목소리 톤하고 표정을 다 거기서 배웠어요. 상황에 맞는 목소리 톤이나 표정 짓는 노하우를 그 기간에 다 익혔어요. 어린이 친구들한테도 진짜 많이 배웠고요.”
공감 코드, 정세진 아나운서의 커튼을 열다
수년간 클래식 프로를 진행했고, 지금도 <노래의 날개 위에>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정세진 아나운서에게 클래식 방송이 잘 맞는지 물어보았습니다.
“만약에 일반적인 라디오 방송들처럼 상호작용이 많았으면 진행하기가 어려웠을 거 에요. 제 성격상 사람 사이에 약간 공간이 있는 게 편하거든요. 공간이 있으면서 서로 도울 수 있을 때 돕고. 아주 즉각적인 반응을 원하는 성격이었다면 클래식이 안 맞았겠죠. 하나의 커튼으로 한 번 들여놓았다가 다시 나가는 느낌의 클래식 방송이 편해요. 즉각적인 것보다는 조금 여유가 있는 것.”
그런데 사실 정세진 아나운서의 공감 기부는 의외로 ‘즉각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내레이션을 맡은 이후에 바로 공감 사무실을 방문하여 기부를 결정한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즉각적으로 기부를 결정하게 됐는지,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때는 커튼이 확 열리는 거죠(웃음). 보통 내레이션을 부탁하면 내용이 뭐냐고 물어보잖아요. 내용을 들어보니까 느낌이 좋았어요. 또 나중에 편집한 내용을 직접 보니까 역시 느낌이 굉장히 따뜻하더라고요. 내레이션하면서도 몰입이 많이 되었고. 동료 기자가 같이 공감에 방문하자고 했을 때 정말 뵙고 싶었어요. 그리고 사실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은 기부밖에 없으니까 즉석에서 결정한 거죠. 그래서 흔쾌히, 얼마 되지는 않지만 매달 한다는 거. 제가 적극적인 듯 적극적이지 못한 부분이 있는데, 제가 좋아하는 코드다 그러면 적극적으로 되는 거 같아요.”
공감으로 가는 커튼이 확 열리게 한 ‘코드’가 무엇인지 궁금했습니다.
“전문직을 가진 사람들은 현실에 안주하기 쉽잖아요. 관문 같은 걸 한 번 통과했다는 이유로 삶이 편안해질 수 있기 때문에. 그런데 ‘그 통과한 것에 안주하지 않고, 사회적으로 소외된 영역에서도 뭔가를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나이가 들수록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마침 공감 변호사님들 만났을 때 그런 게 저한테 와 닿았던 부분인 거 같아요. 사람들이 아나운서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와는 조금 다른 상(象)을 만들어보고 싶은 욕심이 있는데, 공감 변호사님이 그런 걸 보여주셔서 즉각적으로 기부하게 된 거죠.”
정세진 아나운서는 기회가 된다면 새로운 인터뷰 프로그램을 통해 앞서 말한 ‘조금 다른 상’을 만들어 보고 싶다고 합니다.
“편집자와 단순한 의미의 전달자 사이의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 인터뷰 프로그램을 맡아보고 싶어요. 우리 사회를 보면 사각지대에 있는 분들 많잖아요. 그런 분들을 좀 알릴 수 있는 미끼 역할을 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인터뷰 프로그램 생기면 항상 똑같은 사람 나오잖아요. 또 인터넷 매체가 KBS에서 조금 활성화된다면,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아니라도 제가 인터뷰한 걸 올리면 다른 분들이 와서 볼 수 있는 형식도 괜찮을 것 같아요. 공중파가 하는 역할과는 다를 것 같은데, 그 둘이 각각의 영역이 있다면 저랑은 인터넷 매체 쪽이 더 잘 맞지 않을까 싶어서요. 제가 하면서도 보람 있을 것 같고.”
결혼을 앞둔 정신없는 상황에서도 솔직하고 차분하게 인터뷰에 응해주신 정세진 아나운서에게 다시 한 번 감사 드립니다. 인생의 새로운 출발 선상에 선 정세진 기부회원님께 응원을 보냅니다.
글_임상옥(17기 자원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