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공감

정성과 공경, 믿음을 다하면 인간으로의 진실을 만나게 됩니다.



 

 대전 순풍한의원 – 류수업, 배원식, 유은영 님


 

뜻을 같이한 사람들이 모였다. 한의대 동기, 교수 등 서로 배우던 사람들이 중심이었다. ‘정성, 공경, 믿음’의 ‘참 의료의 실천’을 위해 각자 가진 것을 내놓았다. 의술을 댈 수 있는 사람은 의술을, 의료기기를 댈 수 있는 사람은 의료기기를, 재정을 더 댈 수 있는 사람은 재정을 댔다. 류수업 원장과 배원식 원장도 교수와 제자로 만나 같은 뜻으로 의술을 보태는 동료가 되었다. 그 길에 유은영 과장도 뜻을 모았다. 각자 할 수 있는 만큼, 역할을 나누어 서로에게 힘이 되었다. 대전의 대사동과 목동에 같은 이름의 한의원이 생겼다. 이름은 우리말의 ‘순풍에 돛을 단 듯’이라는 표현에서 따왔다. 바람에 순항하는 배처럼, 천지자연이 뜻을 같이하는 길에 순응하며 친구처럼, 가족처럼 ‘같이’ 어울리고자 하는 바람을 담았다. 그리고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지난해 1월부터 공감에 기부를 하고 있는 순풍한의원의 이야기이다. 같은 이름과 같은 뜻으로 운영되고 있는 두 곳 한의원의 류수업, 배원식 원장과 유은영 과장을 만났다. 세상을 향해 ‘참 의료’를 실천하고자 하는 그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나’와 ‘너’를 인정하면 ‘건강한 우리’가 될 수 있다




“이 세상 모든 만물이 떨어져 있지 않고 서로 같이합니다. 복부에 오장육부가 다 있는데 각각의 장부들이 각각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전체가 움직일 수 있잖아요. 우리가 사는 세상도 마찬가지예요. ‘우리’는 ‘나’와 ‘너’가 각각의 역할을 하는 ‘나’의 집합인거죠. ‘나’와 ‘너’를 인정하고 허락하고 존중할 때 ‘우리’가, ‘건강한 우리’가 되는 것입니다.”


순풍한의원의 운영철학이다. 10년간 이어온 이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주기적으로 모여 의견을 나눈다. ‘이 시대의 의학’에 절실히 필요한 것에 대한 고민을 게을리 하지 않기 위해서다.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공동체를 꿈꾸며, 그들은 오늘도 의술을 통해 환자들을 만난다.




그들의 꿈과 고민이 고스란히 녹아든 한의원은 얼핏 보기에 일반 한의원과 다르지 않다. 호기심에 이곳저곳을 눈으로 훑어보다가 치료실에 나란히 걸린 두 개의 액자에 눈길이 멈춘다. 순풍한의원의 운영철학을 엿볼 수 있는 ‘환자정전’과 ‘의사․간호사 권리정전’이다. 그곳엔 환자들에게는 그들이 주장할 수 있는 권리가, 의료진들에게는 생명을 다루는 이들이 지켜야 할 책임과 의무가 적혀있다. 한의원 운영의 주체가 환자가족과 의료진이기 때문이다. “환자가족들이 여기서 주인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그렇게 느끼실 수 있도록 한 것뿐”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한의원을 소개하는 작은 홍보물에도 눈에 띄는 것이 있다. ‘응급 및 진료상담’으로 표시된 곳에 적힌 휴대전화번호다. 각 본원 원장들의 연락처라는데, 원치 않는 개인정보 노출에 예민한 세상에 대놓고 적혀있는 개인연락처가 의아스럽다.


“아플 때, 가까운 형제나 사촌이 의사라면 편하게 전화해서 물어볼 수가 있잖아요. 마찬가지로 환자가족들이 급히 의사의 상담이 필요할 때나 처방이 필요할 때, 바로 상담 받으실 수 있도록 한 거예요. 환자가족들의 주치의로서 정성을 다하는 입장에서요. 가족 중 한 명이 의사인 것 같은 느낌을 받으셨으면 하는 마음인거죠.”


사용할 약재를 국산을 고집하는 것도, 약을 달이기 전 깨끗이 씻어 사용하는 것도 내 가족처럼 환자들을 대한다는 마음의 표현이다.




그들은 ’건강‘을 주제로 사람들의 몸과 마음과 뜻이 건강해지기를 바란다. 지난 3월에는 대전중학교와 ‘학교사랑 결연 협약’을 맺었다. 학교와 지역사회와 협력관계를 만들고, 건강 상담을 통해 학생들의 건강한 생활습관을 정착하는데 기여하고자 하는 바람을 담았다. 좋은 뜻을 나누고 싶은 한의사들과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이 모인 ’서로 사랑하는 가족 모임‘을 통해 독거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방문 진료와 도시락 봉사도 여러 해 이어오고 있다. 지역의 고민을 같이 하고자 하는 마음에서다. 가까이에서 보고 직접 움직이며 마음을 전하는 그들의 활동은 담담한 그들의 말투를 닮았다.



 


정성과 공경을 다하면 인간으로의 진실을 만날 수 있다




“수많은 나의 모습을 환자가족들을 통해 구체적인 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의사들에게 기억에 남는 순간이라면 ‘치료가 잘 되지 않는 경우’나 ‘치료가 되지 않는 환자가 치료가 잘될 때’이겠지요. 그런데 그것은 내 입장이에요. 물론 처음에 개원했을 때에는 환자분들을 대하면서 치료에 대한 강박 같은 것도 있었습니다. 점점 많은 환자들을 보면서 그런 습관들을 고치게 되었죠. 치료라는 과정을 통해 약과 침을 주면서 들어주고 공감하는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환자들을 대하는 것이 편해졌지요.”




그들은 관계에 주목한다. 의사와 환자가 만나는 입장이 아닌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이라 관계를 규정짓는다. 한의학의 특성상 자연의학, 통합의학, 예방의학의 측면이 강하고 한방, 대체의학, 건강식품 등 다양한 치료방법들을 다루기 때문에 내원하는 이들은 많은 것들을 묻는다. 환자들을 만나 듣고, 말하는 시간을 통해 서로 교감하고, 공감한다. 의사로서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다. 때문에 환자들과 만나는, 사람을 만나는 매 순간이 그들에겐 소중하다.




“환자가족들은 나를 성장시켜주는 분들이지요. 들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인간이 되어간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리고 서로 정성과 공경을 다하다보면 인간으로의 진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서로에게 기억되고 남을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거죠.” (류수업 원장)


“내가 사랑하고 사랑을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이 많아서 좋아요. 아픔을 같이 할 수 있는 동료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아서 좋고요. 마음을 같이하고 마음을 표현했을 때 있는 그대로 받아줄 수 있다는 것, 그게 참 좋습니다.” (배원식 원장)


10년이라는 시간동안 쌓아온 그들이 말하는 담담한 진심은 옛 선현들의 가르침에 닿아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자신을 ‘행운아’라며, 다른 능력이 없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행복하다’며 스스로를 낮춘다.




공감하는 것만으로도 살 맛 나는 세상이, 가족이 될 수 있다




공감을 알게 된 것은 그들이 잘 알고 있는 선생님으로부터였다. 재작년 말, 한 방송사에서 다룬 공감의 이야기를 찾아보았다. 때때로 그들이 걷는 길이 외롭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세상과 만나는 공감을 보며 서로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기부하자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그래요, 하지요”하고 흔쾌히 수락했다. ‘공감과 가족이 되고 싶다’고, 유은영 과장은 기부 신청서의 말미에 적었다.




“공감은 이미 가족이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기부에 동참할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공감을 몰랐던 것에 너무 무심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우리가 의료를 택해 사람들과 공감하는 것처럼, 공감은 다른 방법으로 공감하고 있는 거잖아요. 큰 뜻 안에서 각각의 역할에 맞게, 차이로서 세상에 드러나고 있는 거죠.”


 





 


그들은 공감에 바란다




“상식이 공감될 수 있는, 진심이 공감될 수 있는 ‘옹달샘’같은 공감이 되어주시기를 바랍니다. 혹 승소하지 못하더라도 의뢰하신 분들이 ‘저 사람이 나와 공감할 수 있다’는 힘과 인간으로의 믿음이 다시 그분들이 일어나 삶의 터로 갈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될 수 있을 거예요. 순풍한의원도 환자가족들을 다 고치지는 못하지만, 같이 노력해주고 공감하는 곳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공감’을 해주는 것만으로도 ‘살맛’나는 세상이, 친구가, 가족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류수업 원장)


“투명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어져 올 수 있었잖아요. 계속 그렇게, 투명하게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유은영 과장)


“파이팅입니다. 파이팅이라고 전해주세요.” (배원식 원장)




‘가족’이라는 가치에는 ‘이유와 조건이 없는 이해와 사랑’이라는 의미가 내재되어있다. 그런 의미에서 순풍한의원의 ‘가족’은 그들이 추구하는 이상의 완성형과도 같다. 정성과 공경, 인정과 존중, 사랑과 공감을 포괄하는 ‘가족’이라는 단어가 새삼 숭고하게 느껴지는 것은 잠시 잊고 살았던 가족의 가치를 재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가족이라 불러주는 이들이 있어 든든하고 힘이 난다. ‘살맛’이 난다.


글_ 안주영